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인도네시아 부통령이 오랜 침묵을 깨고 정권 도전의 꿈을 드러냈다.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의 부정의혹을 둘러싼 정국의 소용돌이에도 불구하고 줄곧 관망자세를 유지해 오던 메가와티가 최근 반 와히드 입장을 굳힌 것이다.
메가와티는 지난 15일 수마트라섬의 파칸바루에서 열린 민주투쟁당 지부대회에서 "우리 당의 당수가 대통령이 돼야만 한다" 고 말했다. 의회 제1당인 민주투쟁당의 당수는 바로 메가와티 자신이다. 이날은 와히드가 태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이었으나 메가와티는 전례를 깨고 공항에 나가지 않고 지방에서 와히드에 대한 도전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하루 전날에는 의회가 와히드 대통령의 탄핵을 처리할 헌법상 최고의결기구인 국민협의회(MPR) 소집을 추진 중인데 대해 "중단시킬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 말해 탄핵 찬성쪽으로 입장을 굳혔음을 분명히 했다.
메가와티는 지난해 와히드의 공금횡령 의혹이 불거진 후 증폭된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지켜왔다. 자신이 이끄는 민주투쟁당은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지만 정작 메가와티는 부통령으로서 와히드의 국정운영에 협조했다.
여기엔 두 사람의 개인적인 친분도 크게 작용했다. 와히드와 메가와티는 수십년 동안 오누이처럼 지내왔으며 와히드가 1999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매주 수요일 메가와티의 집을 방문, 아침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다.
와히드가 지난달 30일 의회의 2차 해명요구서를 받고 탄핵위기에 휘말리자 7명의 각료들은 메가와티와의 협상에 나섰다. 와히드가 이끄는 국민각성당의 의석 점유율은 겨우 10%대여서 위기돌파를 위해선 메가와티의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와히드가 "각료임명권과 정책결정권을 넘길 수 없다" 고 버팀에 따라 협상은 결렬됐다. 결국 메가와티와 와히드는 99년 대선 이후 다시 정면대결을 앞둔 정적이 됐다. 와히드 진영은 18일 메가와티에게 "부통령직을 사임하라" 고 공격했다.
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의 국부로 국민적 존경을 받고 있는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이다. 99년 대선에서 이슬람 교단의 지원에 힘입은 와히드에게 예상 밖의 패배를 당했지만 서민층에선 여전히 압도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두 사람의 싸움은 와히드가 오는 30일까지로 기한이 잡힌 의회의 해명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전면전으로 치닫게 될 전망이다.
예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