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그린스펀, 14년간 73번 금리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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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 15일(현지시간) 금리를 다시 낮췄다. 재임 14년째인 그린스펀 의장은 이번까지 73회에 걸쳐 금리를 조정했다. 올들어 금리조정의 약효는 과거만 못하다는 평가지만 그린스펀의 '금리조정의 역사' 는 미국 경제의 성쇠와 처방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 연평균 5.2회 금리조정=1987년 8월 11일 FRB 의장에 취임한 그린스펀은 취임 직후인 9월 4일 재할인율(연방은행과 일반은행간 금리)을 5.5%에서 6%로, 연방기금 금리(일반은행간 콜 금리)를 7.0%에서 7.25%로 인상하면서 금리를 통해 미국 경제를 조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14년 동안 모두 73회, 한 해 평균 5.2회꼴로 금리를 올리거나 내렸다. 88년 14회로 가장 많이 금리를 바꾼 반면 93년에는 한 차례도 금리를 조정한 적이 없다.

금리를 올릴 때는 조심스럽고, 내릴 때는 과감한 편이다. 금리를 가장 많이 낮춘 것은 0.5%포인트로 지난해까지 3회 있었으며, 94년 11월 15일 금리를 0.75%포인트 올려 1회 인상폭으로는 최고를 기록했다.

◇ 연속 인상 18회, 연속 인하는 25회=취임 직후 그가 처했던 가장 큰 문제는 환율이었다. 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달러가치가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무역적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달러가치 하락은 수출증진보다 주식과 채권의 매도를 부추겼다. 그린스펀 의장은 달러화 하락을 막기 위해 첫 금리 조정을 '인상' 으로 했다.

87년 10월 19일 급작스런 주가 폭락으로 연속 3회 금리를 내렸지만, 88년 3월부터는 달러가치를 유지하고 인플레이션을 막겠다는 본래의 목표를 되찾아 1년 동안 무려 18회에 걸쳐 금리를 인상했다.

경기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컸으나 그는 이 기간 중 6.50%였던 금리를 9.81%까지 끌어올렸다. 그의 재임 기간 중 가장 높은 금리 수준이었다.

그러나 89년 6월부터 전략을 수정했다. 경기후퇴 조짐이 분명하게 감지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엔 3년 동안 25회에 걸쳐 금리를 떨어뜨렸다. 이 기간 중 금리가 올랐던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92년 9월 4일 0.25%포인트 금리를 인하했을 때 연방기금 금리는 3.0%로 그의 임기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 이후 지난해까지 금리를 신축적으로 운영, '인플레 없는 성장' 이라는 신경제를 이끌어 왔다. 그가 '금리의 마술사' 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다.

◇ 올해 금리조정은 파격적=올들어 5개월 사이에 월평균 1회씩 큰 폭으로 금리를 내린 것은 FRB 역사에서도 파격적이다. 지난해까지 0.50%포인트 인하는 세차례뿐이었으며, 그것도 연속적인 것은 아니었다. 지난 3월 올들어 세번째로 0.5%포인트 금리를 인하하자 월가에서는 21년 이후 13번밖에 없었던 강력한 조처로 받아들였다.

그린스펀 의장의 파격적인 대처는 미국 경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올들어 다섯 번째 0.5%포인트 금리인하 소식이 전해지자 월가에서는 다시 한번 금리인하를 예측하고 있다.

권순재 뉴욕 푸르덴셜 증권사 수석부사장은 "이번 금리인하는 예상된 일이어서 주가 반등을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다" 며 "실물경제가 좋지 않아 금리는 이제 주가 하락을 방지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는 상황" 이라고 말했다.

이재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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