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정치인 병역비리 있나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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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박노항(朴魯恒)원사의 병역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입조심' 이 유별나다.

수사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혐의자 가운데 정치인은 없다" "취재진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인사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서울지검은 지난 14일 군검찰이 朴원사를 구속기소하자 곧바로 "수사가 길어질 것 같고 특별히 브리핑할 내용도 없으니 엠바고(보도유예)를 해달라" 고 기자단에 요청했다가 거부당했다.

검찰은 그동안 朴원사의 도피로 기소중지된 24건의 사건 관련자 가운데 대학교수 등 일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소환조사를 늦추고 있다. 이같은 검찰의 태도는 4.13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던 지난해 3월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 자제들의 병역비리 수사를 진행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당시 검찰은 서울지검장까지 나서서 "정치인 자제 등 병역비리 의혹 대상자들은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고 공세적 입장이었다.

수사 관계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자제들의 병역비리가 적발된 사회지도층 인사는 30여명이나 된다" 면서 "정치인의 경우 소환이 통보된 야당의원 자제 상당수가 조사에 불응했다" 고 밝혔다.

"계속해 소환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 청구 등을 통해 강제수사하고 필요하면 신상을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 중" 이라는 등 발언 수위도 높아져 갔다.

또 "朴원사가 비리의 핵심" 이라며 朴원사가 검거되면 병역비리를 다 파헤칠 수 있을 것처럼 말한 간부도 있었다. 총선을 불과 한달여 앞두고 병역비리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검찰이었다.

그러나 군.검 합수반이 지난 2월 발표한 수사 결과에서 기소된 정치인은 한나라당 김태호(金泰鎬)의원 1명뿐이었다. 이처럼 불과 1년 사이에 급격하게 뒤바뀐 검찰의 태도는 결국 검찰이 지난해 총선을 앞둔 시기에 '정치적 운신' 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朴원사가 검거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특별한 증거도 없이 마치 정치권이 병무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공표했다가 이제 그에 대한 사실 여부를 밝혀야 하는 검찰의 모습엔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말이 적절한 것 같다.

박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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