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장 이 문제] 공터에 버려진 '양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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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찢어진 소파,부서진 냉장고,스티로폼 조각….

잘 닦아놓은 왕복 6차로의 아스팔트 도로가 온통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있다. 포항시 북구 장성동 장성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법원 ·검찰청 좌우로 택지지구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넓이는 52만여평.1990년초 택지지구 조성사업이 시작돼 2년전 광활한 택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경제난 탓에 아파트라곤 동·서쪽 끝부분에 들어선 현대 ·대림아파트단지가 고작이다.나머지는 도로망과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만 갖췄을 뿐 여전히 빈 터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날마다 ‘버려진 양심’이 쌓여가고 있다. 특히 심한 곳은 서쪽 끝부분인 대림골든빌아파트옆 도로.

택지지구의 서북쪽 끝인 이 도로는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다. 깨진 유리,플라스틱통,옷가지 등 생활쓰레기에서 집을 뜯어낸 벽돌 ·타일조각 등 폐건축자재까지 갖가지 쓰레기가 널려 있다.

주민 김모(54)씨는 “북구청에서 가끔씩 쓰레기를 치워 그나마 정도가 덜한 편”이라며 “한동안 정리하지 않았을 땐 산더미처럼 쌓여 도로인지 쓰레기처리장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인근에는 구청에서 사람들이 나와 담아 놓았다는 쓰레기 포대 20여개가 놓여 있었다.

바로옆 빈터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폐아스팔트유 드럼 20여개가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었다.찌그러지고 녹슨 드럼통에는 폐유가 가득 들어 있다.

주민들은 “드럼통이 버려진 지 1년도 없었다”며 “특수한 폐유인 만큼 버린 사람이나 업체를 찾을 수도 있을 텐데 조사는커녕 치우지도 않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차량으로 버린 탓에 무덤처럼 솟아 있는 폐건축자재 더미도 곳곳에 방치돼 있다.

이곳이 쓰레기장으로 변한 것은 주변 야산이 인근 아파트를 가려 잘 보이지 않기 때문.게다가 대부분은 새벽녘에 차량으로 쓰레기를 싣고와 버리는 탓에 매일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주민 박모(70)씨는 “얼마전 북구청 직원이라는 사람이 ‘버리는 사람을 보면 신고해 달라’고 했지만 구청 직원이 감시를 하지 않아 치우면 또 버리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시청과 북구청은 서로 ‘모르는 일’이라며 책임을 떠넘기다 취재가 시작되자 최근 쓰레기를 치웠다.

하지만 건축폐기물과 폐유 드럼통은 여전히 방치돼 있다.

시 청소과 관계자는 “인근에 집들이 없어 생활쓰레기는 매일 치우지 못했다”며 “불법 투기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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