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홍콩선 ‘한국물’만 권한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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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또 한국물(국내 기업의 해외채권)이야.” “한국물 빼면 추천할 게 마땅치 않다는대요.” 24일 홍콩 금융 중심가 센트럴의 신한은행 홍콩지점. 이곳 직원들이 8000만 달러(약 9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위해 외국계 투자은행(IB)·투자정보업체로부터 받은 보고서엔 한결같이 한국채권을 추천하는 내용이 담겼다.

권오균 지점장은 “지난 4개월간 받은 투자 정보 보고서 중 70~80%가 한국 채권에 대한 것이었다”며 “중국 쪽 투자처를 찾는다고 했는데도 한국물 위주로 추천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받은 추천종목 12건 중 10건이 수출입은행·GS칼텍스·우리은행 등의 채권이었다.


홍콩에 진출해 있는 다른 국내 은행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나은행 홍콩지점은 지난해 1억 달러를 한국물에 투자했다. 김열홍 지점장은 “글로벌 투자처를 찾았으나, 위험 대비 투자수익률 측면에서 한국물만 한 종목이 없다는 게 홍콩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허브 홍콩의 금융시장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은 180도 바뀌었다. 신흥시장 가운데 한국을 안정성과 수익성 양면에서 수위를 달리는 시장으로 본다는 것이다. 2008년 10월 금융위기 한복판에서 “외환위기의 악몽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며 난타당하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국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한국채권을 한국 금융사들이 돌아가며 사줬던 것에 비하면 천양지차다.

전문가들은 한국물의 투자매력이 급부상한 배경으로 원화강세, 거시경제 환경, 금리 등을 꼽았다. 빌 창 홍콩 도이치뱅크 투자자문 수석매니저는 “정보기술(IT)·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은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금융위기에서 가장 빠르게 빠져나오는 등 견조한 경제환경에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기적으로 원화강세가 예상되고 급격한 금리 변동 가능성도 낮아 한국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지난해 10월 홍콩주택금융공사(HKMC)는 4억 달러 규모의 신한은행 해외유동화증권(RMBS)을 인수했다. HKMC는 보수적인 투자로 유명한 기관이다. 이를 계기로 홍콩의 기관투자가들이 공격적으로 한국채권 매집에 나섰다. 홍콩의 외국계 IB 관계자는 “투자 매력과 수익성을 고려하면 한국 시장은 이미 미국·일본·영국·유럽연합(EU)에 이어 빅5급”이라고 말했다.

22일 홍콩 리퍼펀드상 시상식에서 글로벌 신흥시장 채권 등 7개 부문을 휩쓴 세계 최대 채권펀드 템플턴글로벌본드도 달러(44%) 다음으로 원화 채권(15%)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템플턴의 신흥시장 채권 중 한국채권 투자 비중은 1위였다. 홍콩 주재 국내 감독기관 관계자는 “지난해 2분기 이후 홍콩의 외국계 IB들 사이에서 ‘막차라도 타야 한다’며 한국의 인프라스트럭처 채권·펀드에 돈을 몰아넣었다”고 전했다.

2월 말 기준으로 홍콩 자산운용사 인베스텍의 아시아 주식시장 투자 포트폴리오(일본 제외)도 한국(26.63%)의 비중이 가장 컸다. 근소한 차로 중국(26.27%)이 뒤를 이었고 대만·홍콩·인도가 5위권에 들었다.

다만 단기자금의 지나친 유입은 자칫 외환시장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은행 홍콩사무소는 “환차익을 노린 단기자금은 시장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며 “자금의 성격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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