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애니…'프레데릭 백 베스트' 출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그의 손끝이 닿은 곳에선 꿈이 묻어난다.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한 색감과 따뜻하면서 깊이 있는 그림체로 전 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나무를 심은 사람' 의 애니메이터 프레데릭 백.

아카데미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그의 대표작을 묶은 '프레데릭 백 베스트 컬렉션' (라바필름)(http://www. rabafilm.co.kr)이 출시됐다. 이로써 지난해 나온 '나무를 심은 사람' (성 베네딕도)과 올 초 출시된 '위대한 강' (라바필름)까지 합해 백의 작품 10여편 중 여섯 편이 국내에 소개됐다.

컬렉션에 수록된 작품은 '크랙!' '투 리엥' '일류전' '타라타타' 등 모두 네 편으로,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환경 파괴나 인간 소외 등 답답한 현실을 은유와 생략의 기법을 적절히 사용해 팬터지의 세계로 풀어내는 솜씨는 '애니메이션의 성인(聖人)' 이라는 칭호가 결코 무색하지 않다. 특별한 대사나 내레이션 없이 상황을 지루하지 않게 이어나가는 만화적 순발력도 대단하다.

전통적인 셀과 물감을 쓰지 않고 유리 또는 광택을 없앤 셀 위에 크레용을 사용하는 그의 독창성 있는 그림은 기법적으로도 수많은 애니메이터 지망생들의 교본이 되고 있다.

'크랙!' (1981년)은 젊은 목수가 애인에게 청혼하며 선물한 흔들의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추억담이다. 목수가 꾸린 행복한 가정을 거쳐 미술관까지 흘러 들어간 의자가 지난 날을 회상한다. 흥겨운 캐나다의 민속 음악과 어우러진 무도회 장면이 볼 만하다.

특히 미술관에 걸린 그림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회상 장면은 환상의 극치다. 아카데미상 수상작이며, 84년 로스앤젤레스 애니메이션 올림피아드에서 '지난 80년간 제작된 가장 우수한 애니메이션 50편' 중 6위를 차지했다.

천지창조 이후 아담과 이브가 지은 원죄를 소재로 한 '투 리엥' (아무 것도 없다는 뜻.78년)은 백이 즐겨쓰는 메타모르포시스(metamorphosis:변형)기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메타모르포시스는 장면을 전환할 때 사용하는 기법으로, 신이 천지를 만듦과 동시에 천지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 부분에 쓰였다. 백은 '위대한 강' 에서도 동일한 기법을 사용, 초현실주의적인 색채를 불어넣었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간결한 그림체와 풍부한 은유로 팬터지적 요소가 다분한 '일루션' (75년)은 자연 파괴에 대한 백의 비판의식이 본격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정원에 어느날 마법사가 나타나 아이들을 꼬드기며 자연을 파괴한다. 잃어버린 낙원을 복구하는 열쇠는 결국 티 없이 맑은 동심이다. 셀 애니메이션과 컷 아웃 애니메이션(그림을 오려내 그 움직임을 평면상에서 촬영하는 기법)을 혼합했다.

'타라타타' (76년)는 거리 퍼레이드에서 어른들에게 소외된 아이들이 펼치는 상상의 세계를 담고 있다. 네 편 중 문명비판적 요소가 가장 덜하다. '일루션' 은 프랑스 국제아동영화제에서, '타라타타' 는 스위스 국제 아동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기선민 기자

*** 프레데릭 백은…

올해 77세인 프랑스 출신 캐나다 애니메이터 프레데릭 백은 30여년간 인간과 환경의 관계, 자연에 대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탐구해온 작가다.

파리에서 북 일러스트레이션과 벽화를 공부한 그는 스물네살이 되던 1948년 캐나다로 이주한다. 원시의 흔적이 문명과 공존하는 대륙과의 운명적 만남은 그에게 풍부한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캐나다 국영방송인 SRC에서 10여년에 걸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던 그는 70년 첫 작품으로 '아브라카다브라' 를 발표한다.

이후 '새의 창조' '일루션' '투 리엥' '크랙' '나무를 심은 사람' '위대한 강' 등 걸작 행진이 이어진다. '색채의 마술사' 라는 별명답게 화려한 이미지를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철학적.문명비판적 메시지를 끼워넣는 것을 잊지 않는 점이 백의 진정한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카데미 수상작 '나무를 심은 사람' (87년)은 칸 영화제에도 초청됐으며, '위대한 강' (93년)은 안시.히로시마.오타와 등 유수의 국제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거머쥐는 위용을 과시했다. 최근에는 캐나다 원주민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