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내기 골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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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사나이가 친구들과 함께 골프를 쳤다. 마지막 홀에서 3m짜리 퍼팅만 성공하면 이날 우승상금 2백달러를 차지하게 된다. 그가 퍼팅자세를 취하는 순간 골프장 옆으로 장례행렬이 지나갔다. 갑자기 그는 퍼터를 내려놓고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고는 조의를 표했다.

장례행렬이 지나가자 그는 다시 퍼터를 들고 퍼팅을 했다. 이를 본 친구가 말했다. "감동적이군. 지나가는 장례행렬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그 중요한 퍼팅을 중지하다니…. "

그 친구가 대답했다. "응, 25년 같이 산 마누라야. " 숱한 골프 유머 중 하나다.

전세계 수많은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골프는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목동들이 풀밭에 있는 돌멩이를 막대기로 쳐서 토끼굴에 넣는 게임을 즐겼는데 이것이 퍼져 골프가 됐다는 것이다. 1457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가 국민들이 골프 때문에 궁술훈련을 등한히 한다며 골프금지령을 내린 걸 보면 이미 15세기에도 골프가 꽤나 성행했던 것 같다.

1754년 세계 최초의 골프장인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가 개장되고 1860년 제1회 전영오픈 골프대회가 개최되면서 골프가 전세계로 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보다 1년 빠른 1900년 원산에서 영국인들이 최초로 6홀짜리 골프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운동경기 가운데 골프는 특히 중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경 10.8㎝의 홀컵에 호두알만한 공을 골프채로 쳐 넣는 일이 잘 될 듯 하면서도 막상 뜻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골프평론가 팀 베이어는 '골퍼홀릭' , 즉 골프중독자 자가진단법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거실을 퍼팅연습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나 부인으로부터 '자기는 나보다 골프를 더 사랑해' 란 말을 듣고도 딱히 할 말이 없는 사람 등이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비바람.눈보라에 아랑곳 하지 않고 꼭두새벽부터 골프장을 찾는 한국의 골퍼들은 다 골퍼홀릭이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골프다. 박세리 선수의 '뽀얀 맨발 신화' 에 감격해하며 IMF의 시름을 잊던 민초들이 이번엔 골프 때문에 분노하고 있다. 여3당 수뇌부 인사들의 정신 나간 호화판 '내기 골프' 가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은 모양이다.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골프 명언 하나- '위기가 닥치는 것은 대개 제3라운드 때다' (프로 골퍼 해럴드 힐튼).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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