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이란] 2. 적극적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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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테헤란 시내 탈라하니가(街) 옛 미국대사관은 굳게 문이 닫혀 있다. 건물만 20개나 되는 이곳은 인적이 끊어진 지 오래며 잡초가 무성하다. 외곽 담장엔 '타도 미국' 을 외치는 반미(反美)구호.벽화가 어지럽다.

기자가 현장을 방문한 지난달 25일은 1980년 미국이 특공대를 동원해 인질구출작전을 폈다가 실패한 그날이었다. TV는 부서진 미군 헬기 등 당시 필름을 보여주면서 반미감정을 북돋우고 있었다.

79년 11월 4일 과격파 청년들은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미국이 팔레비 왕조를 부활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사건은 무려 4백44일을 끌었다. 인질 구출에 실패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선의 꿈을 접었다. 인질이 석방된 것은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한 81년 1월 20일이었다. 미국은 이란과 단교했으며, 이란을 '테러국가' 로 분류, 지금도 갖가지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또 1백20억달러의 이란 자산이 동결돼 있다.

이란 역시 다르지 않다.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이란을 무너뜨릴 기회를 노리는 '대적(大敵)' 이다. 97년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양국관계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타미 대통령은 "관계개선은 근본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으며 문제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고 잘라 말한다. 외무부 대변인 하미드 아셰피 박사도 "미국이 반(反)이란 정책을 포기하면 양국관계는 언제든 정상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의 태도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고 비난한다.

미국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이란의 대외관계는 극히 양호하다. 하타미 대통령은 자신의 개혁정책이 국내에서 보수파의 방해로 성과가 없음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외교에 적극적이다. 혁명 후 이란 지도자로선 처음으로 99년 서방국가인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만났다.

이어서 프랑스를 방문해 유네스코 연설에서 자신의 지론인 '문명간 대화' 를 역설했다. 같은 해 영국과 20년 동안 단절됐던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와의 관계다. 하타미 대통령은 지난 3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나 러시아의 대(對)이란 무기판매 재개, 이란 핵발전소 건설 기술지원에 합의했다.

특히 4조달러어치의 석유.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카스피해 해저유전 개발에 '미국을 배제하고' 양국이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이란과 러시아는 앞으로 중국과 힘을 합칠 것으로 전망된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저의 『거대한 체스판』에서 중국.러시아.이란이 합세한 거대한 반미동맹을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 로 지적한 바 있다.

이란의 적극외교는 같은 이슬람권 국가들을 대상으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소원했던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와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슬람 부흥운동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팔레스타인 문제에도 적극적이다. 지난달 24~25일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봉기)에 대해 토의하는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이란은 팔레스타인 지원을 이슬람권의 최우선 당면 과제로 부각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이슬람권 지도국가로 부상했다. 팔레비 시절 '걸프지역의 경찰관' 역할을 맡았던 이란의 화려한 변신이라고 할까.

테헤란=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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