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권의 개혁 마무리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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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제 민주당 최고위원 워크숍에서 "지금까지 추진해 온 개혁 정책을 정리.보완해 완벽하게 매듭지어야 한다" 는 '개혁 마무리론' 내지는 '개혁 성과 추수론' 이 제기됐다. 그동안 이런 의견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현 정권은 그 때마다 개혁 반대 세력의 수구 논리 정도로 몰아붙여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집권당 내에서, 그것도 당 지도부라 할 수 있는 최고위원들 대부분이 같은 주장을 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당장 청와대 대변인이 상시(常時)개혁론을 들고나와 당의 건의를 사실상 일축했다는 데서도 집권측이 이 문제를 얼마나 민감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개혁 마무리론이든 상시 개혁론이든 임기 말에 새로운 개혁 정책을 추진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은 김영삼(金泳三)정권 때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또 여당 최고위원들이 민심 수습의 각론 제시는 없이 총론만 내세워 청와대와 민주당의 권력갈등으로 번지는 듯한 현 상황도 뭔가 크게 잘못된 방향이다.

중요한 것은 왜 최고위원들과 상당수 의원이 공개적으로 개혁 방법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지, 또 그런 얘기가 나온 시점이 언제인지 집권측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4.26 재.보선 완패라는 충격 속에서 민심 수렴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제기된 때에 민심과 개혁 정책의 괴리 문제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이다.

개혁 대신 변화라는 말을 쓰자는 궁여지책이 나올 정도로 각종 개혁 정책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와 실망감이 크다는 것이 최고위원들의 판단이다.

왜 그런 결론이 나오는가. 의약분업은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이 결여된 준비 안된 개혁의 대표작이었다. 의사.약사와 환자 모두 불만인 정책이 돼버렸다. 자율적으로 진행돼야 할 언론 개혁은 정부의 타율이 개입하면서 언론자유 침해 공방으로 이어졌다.

언론고시가 부활되고 세무사찰 수준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 개혁은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개혁을 개혁 주체와 개혁 대상의 이분법으로 나눠 진행한 것도 문제였다. 정부가 시민단체와 손잡고 개혁 대상을 '악(惡)의 세력' 으로 몰아붙이는 대중인기 영합주의(포퓰리즘)는 적극적 반대 세력을 양산했다. 이러다보니 '좌익이 더 이상 국정을 농단하지 못하게 우익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는 자유기업원장의 주장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여권은 당의 개혁 방식에 대한 반성론 제기를 개혁 정책 재점검의 계기로 삼기 바란다. 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 개혁을 이끌어가려 해서는 안된다. 개혁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문제가 된 개혁 정책은 철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구나 임기 말에는 권력누수 차단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청와대와 차기 정권 재창출을 최대 목표로 하는 여당이 갈등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모적 개혁 논쟁에 휘말리기보다 개혁을 마무리할 구체적이고도 현실성있는 대안 모색에 정부와 여당이 지혜를 모으고 힘을 쏟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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