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바둑 바탕은 巫의 정신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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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상상계적 안목에서 보면 바둑판은 우주다. 그 우주 속에서 흑과 백이 맞물려 돌아간다. 한쪽이 신령계라면 다른 쪽은 인간계가 된다. 한쪽이 선(善)이요, 다른 쪽이 악(惡)의 세력이라 해도 좋다. 한쪽이 욕심을 내거나 하여 상대성에서 벗어날 때 그쪽은 패한다. 이 패배는 곧 인드라(Indra)의 패배요, 상상계 꽃밭의 시듦과 이미지가 바로 연결된다.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조흥윤 (사진)교수가 11, 12일 명지대 용인캠퍼스에서 열리는 '세계 바둑학 학술대회' 에서 발표할 특이한 논문의 한 대목이다. 논문의 제목은 '동아시아의 바둑문화와 그 상상계적 성격' .

조흥윤 교수는 바둑의 승부적 관점보다 바둑이 품고 있는 시공을 뛰어넘는 신화성(神話性)에 주목한다. 신화의 세계에서 승부란 인간세계에서처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의 우주적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교수는 모든 문화는 상상력의 소산이란 전제 아래 한국의 무(巫), 중국의 도교, 일본의 신도(神道)를 3국의 대표적인 종교문화로 규정한다.

무(巫)의 세계는 이승의 현상계(인간계)와 저승의 상상계(신령계)로 구성되는데 서로 음양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태극과 같다. 이런 상상계의 원형적 구조가 흑백이 맞물려 돌아가는 바둑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 바둑의 실전적 힘은 신화적 혼돈(chaos)의 기운이 내재하는 한국 사회의 토양에서 우러나는 것이며, 일본의 모양 바둑 역시 지나치게 제도화하고 정형화한 그들의 상상계적 특성 탓이라고 말한다. 조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인다.

"한국 바둑의 힘이라는 것도 상상계의 원리에 의하면 거친 감이 짙다. 음양이 맞물려 돌아가는 태극의 부드러운 힘은 한국 상상계가 온전히 펼쳐질 때 저절로 발휘된다. "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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