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주민 생활속 뿌리 내린 대구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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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달 23일 저녁 대구시 만촌동 우방아파트 단지 안 호프집. 대구은행 만촌우방출장소의 고객 호프데이 행사가 한창이었다. 낮에 객장에 들르기 어려운 단지내 남성고객을 직접 찾아가 파고드는 '지역밀착 경영' 의 현장이다.

이 은행 제갈상규(44)출장소장은 "퇴근한 뒤 집 근처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한잔 하며 어울리는 자리라서 금방 이웃처럼 친해진다" 고 말했다.

대구은행이 이같은 지역밀착 경영을 바탕으로 금융 구조조정의 파고 속에서도 '작지만 강한 은행' 으로 쾌속 항진을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12개 지방은행 가운데 7곳이 퇴출되고 3곳은 금융지주회사 편입, 한곳은 조건부 경영개선 명령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구은행은 창립 이후 33년째 흑자를 기록하며 시장을 더욱 다졌다.

3월 말 현재 대구지역 금융권 수신의 38%가 대구은행으로 몰렸다. 은행측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우리 은행' 으로 불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현장을 뛰고 있다.

3월 말 대구를 찾은 당시 정건용 금융감독위 부위원장(현 산업은행 총재)이 "재무구조와 수익성 면에서 문제가 없으며 지역에 뿌리를 내려 성공한 대표적인 은행" 이라고 평가해 고무되기도 했다.

◇ 지역밀착 경영=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대구은행도 과거 거품경영의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어려움에 직면했다. 뉴욕.도쿄.홍콩 3개 해외지점을 비롯, 국내에도 서울.부산.인천.마산 등에 12개의 점포를 두었는데 지역 수신의 점유율은 30%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이들 대구지역 이외의 점포들은 기아자동차.뉴코아.우성건설 등 대기업과 거래하면서 대규모 부실을 떠안게 됐다. 그러자 대구 지역에서도 은행의 독자생존 가능성을 믿지 않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고 주가가 하락했다.

지난해 초 이 은행 최초의 행원 출신 행장으로 선임된 김극년(金克年.62)씨는 지역밀착 경영을 기사회생을 위한 경영목표로 제시했다. 金행장의 이니셜을 따 'K-프로젝트' 로 이름지어진 이 경영목표에 따라 대구.경북 지역 바깥에는 서울의 4개 점포만 남겼다.

金행장은 "앞으로 지역점포 직원들은 지역내 고객의 사정을 동장.통장보다 더 꿰뚫고 있어야 한다" 며 직원들의 지점 근무연한을 종전 1~2년에서 3~4년으로 늘리도록 했다. 동네 또는 시장 단위의 주민친목 모임에 지점장이 정회원으로 가입했고, 여직원들은 인근 아파트부녀회의 협력회원이 되었다.

철도가 지나는 지역에선 통학시간에 직원들이 교대로 건널목을 지켰고, 양로원.어린이집 등의 사회복지시설은 직원들의 봉사활동 장소가 됐다. 국산 섬유기계 구입대출 등 지역밀착형 상품도 잇따라 내놓았다.

점포마다 주민들과 이웃처럼 가까워지자 거래 예금계좌 수가 늘어나고 지점장이 떠날 때는 주민들이 감사패를 전하기도 했다.

◇ 작은 일류은행이 목표=대구은행은 지난해 말 지방은행 최초로 11조원의 수신고를 기록했다. 3백만개의 예금계좌는 대구.경북 인구(5백50만명)의 절반을 넘는 것으로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도 11.7%(2000년 말)로 국내 은행 중 상위권이다.

지난 3월에는 3천3백억원 규모의 부실자산을 자산관리공사에 한꺼번에 매각해 깨끗한 은행(클린 뱅크)을 선언했다. 그 결과 부실(고정 이하)여신 비율을 지난해말 8.7%에서 5.7%로 낮췄다.

전략기획팀 정규근 차장은 "우량은행에 근접하는 영업지표뿐만 아니라 대구.경북권의 확고한 시장을 바탕으로 계속 뻗어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대구=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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