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화산책] 19. 봄철 야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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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 주말이면 남녘의 고속도로는 행락객들로 몸살을 앓는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으로 유명한 북녘의 영변 약산동대(藥山東臺)에도 백화가 만발했을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봄을 어떻게 만끽하고 있을까.

우리의 1960, 70년대 풍경이 떠오른다. 그 때는 갈 곳이 마땅찮아 서울 사람들은 그저 창경원으로 몰려갔다. 벚꽃 피는 계절에 창경원을 다녀오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못할 정도였다.

자동차문화가 없는 평양의 풍경이 바로 이런 것 같다.

평양 주민들은 대개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 간다. '청룡열차' 등 놀이시설이 갖춰진 평양 대성산유원지는 행락객들이 즐겨 찾는 곳. 버드나무가 많아 예부터 유경(柳京)이라 불린 보통강변의 나들이 코스도 젊은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곳곳에 자리를 펴고 차려온 음식으로 봄을 즐긴다.

문화.지리학적으로 볼 때 북녘은 단오 문화권이고 남녘은 추석 문화권이다. 날씨가 추운 북쪽인지라 봄을 더 사랑한다.

지난 4월은 '수령(김일성)의 생일' 인 태양절까지 겹쳐 이래저래 축제 분위기였다.

북한 사람들은 딱딱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어디서나 신바람나게 놀기를 좋아한다. 화사한 조선옷을 입고 양산을 받쳐든 가족나들이 그룹이 눈에 많이 띈다.

공장 노동자나 사무직 노동자들의 집단 나들이도 보이는 계절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하는 편이다. 기타나 아코디언을 가져온 사람들이 재치있게 웃기는 동료 사회자를 앞세워 노래자랑과 춤판을 벌인다. 한쪽에선 장기나 윷놀이.주패놀이에 열중한다.

남북한 주민이 모여 야유회를 갖고 노래자랑을 한다면□ 틀림없이 북한 사람이 이길 것이다. 남한 사람은 노래방 탓에 대부분 노래가사를 까먹어 가사가 흐르는 영상반주 없이는 '싱거워서' 노래를 못한다.

게다가 북한 사람은 당국이 보급한 무도를 학교에서 익힌 때문인지 춤을 잘 춘다. 노래자랑이 벌어지면 남녀 모두 사양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노래자랑이 시들해지면 금방 춤판이 이어진다. 노년층의 야유회를 보면 이들의 춤에서 전래 민족 춤사위가 드러난다.

어느 체제에서건 봄은 분명히 희망이다. 집안에서 먹거나 장마당에 내다팔 소소한 씨앗들을 텃밭에 정성스레 뿌릴 것이다. 작은 텃밭이나마 경제난의 상징인 '고난의 행군' 을 이겨내는 데 더할 나위없이 소중하다.

바글바글 들뜬 인파 속에서 평양소주 한잔에 취해 취흥을 돋우며 가무를 즐기는 시간은 북한 사람의 소중한 봄날 추억거리임이 분명하다. 사계절이 분명한 나라에서 겨울을 이겨낸 기쁨을 꽃놀이로 즐기는 데 남북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스친다.

주강현 <우리민속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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