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화학은 생명의 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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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 순간에 천사가 나타나서 딱 한가지 질문에 답을 해주겠다면 무엇을 물어보아야 할까? 이런 소위 천사 질문(angel question)의 기회가 주어지면 많은 사람들은 외계에도 생명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풀고 싶어할 것이다. 외계생명체 존재 여부는 지구상의 생명이 어떻게 시작됐는가 하는 것과 관련된 대단히 흥미로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몸을 이루는 화학 원소들이 약 1백50억년 전에 탄생한 우주가 진화하면서 생성된, 그리고 지금도 별을 구성하고 또 별들 사이의 공간에 흩어져 있는 원소들과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신토불이(身土不二)는 원소 면에서 우주적으로 적용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일단 원소 면에서 우리와 유사한 생명체가 외계에 존재할 가능성은 있는 셈인데, 문제는 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외계생명체와 대화를 시도하려면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아무리 국제어라 해도 어떤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식으로 영어가 통할 리는 없다.

외계생명체와의 교신을 위해 칼 세이건의 주도로 1974년 11월 16일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아레시보 전파천문대에서 외계로 마이크로파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마크 트웨인의 익살대로 짧은 편지를 쓸 시간이 없다면 긴 편지를 써야 하겠지만, 외계인과의 교신을 위해서라면 긴 시간을 들여서라도 간단명료한 편지를 써야만 했다.

그 때 보낸 아레시보 메시지의 핵심 내용은 2진법의 숫자, 생명에 필수적인 다섯가지 원소(수소.탄소.질소.산소.인)의 원자번호, DNA에 들어있는 네가지 염기(아데닌.구아닌.타이민.사이토신), DNA 이중나선과 사람의 세포에 들어 있는 염기쌍 수 30억, 사람의 모습, 키, 세계인구, 태양계, 아레시보 천문대다.

자연의 기본언어는 수이다. 그래서 아레시보 메시지에는 2진법, 생명의 핵심원소의 원자번호, 염기 종류, 염기쌍의 수, 나선의 수 등 여러가지 수가 나온다. 그러나 수만 갖고는 우리가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리기에 부족하다. 수는 생물에나 무생물에나 골고루 적용되기 때문이다.

2진법 다음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는 수소.탄소.질소.산소.인의 다섯가지 원소를 근간으로 해서 이들의 화학결합을 통해 만들어진 네가지 염기를 생명의 알파벳으로 사용하고, 이중나선구조의 DNA에 30억개의 염기쌍으로 유전정보를 기록해 생명을 영위하는, 태양계의 셋째 행성인 지구에 살고 있는 존재이다" 가 된다.

그러고 보면 원자들로부터 생명의 알파벳인 염기들을 만드는 과정도 화학변화이고, 30억개의 염기들이 DNA라는 생체고분자에 서열을 이뤄서 정보를 기록하는 것도 화학변화다.

물론 DNA의 유전정보를 오류 없이 복제해서 대물림을 하고, DNA의 염기서열을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로 바꿔 대사, 항상성 유지, 운동, 면역, 성장, 그리고 고차적인 두뇌작용 등 다양한 세포활동에 사용하는 모든 과정의 핵심은 화학변화다.

왜냐 하면 이 모든 일은 물질의 변화를 통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이는 생명은 없다. 제멋대로가 아니라 질서정연한 화학결합의 원리를 따라 일어나는 변화말이다.

생명의 화학변화가 일어나려면 적당한 무대가 필요하다. 너무 추우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너무 뜨거우면 원자들이 결합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외계생명체를 찾을 때는 지구처럼 공기.물.흙이 공존하고, 생체 내에서 산화반응(불)을 통해 에너지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산소가 있는 행성을 찾는다.

195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탠퍼드 대학의 콘버그 교수는 "화학은 우주적으로 통용되는 사투리가 없는 생명의 언어" 라고 말했다. 1백50억년 전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는 원소 면에서 하나의 대가족이기 때문에 지구상의 생명과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생명은 같은 원소들로 같은 화학원리에 따라 운영될 수밖에 없다. 우리 몸을 이루는 흙은 그들의 흙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생명과학 시대에 대비해 생명의 언어인 화학을 잘 익히기를 기대하면서 외계로부터 회신을 기다린다.

金熙濬 <서울대 교수.분석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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