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까만 개미가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춰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
젖꼭지가 가을끝물 서리맞은 고욤처럼 말랐다
댓돌에 보리이삭을 치며 보리타작을 하며 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
해 다 진 술판에서 한 잔 걸치고 숯처럼 까매져서 돌아가던 여자
담장 너머로 나를 키워온 여자
잔뜩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이 아슬하다
- 문태준(1970~)의 '개미'
저 1930년대의 뛰어난 시인 백석을 오늘날 다시 만난 듯하다. 까만 젖꼭지와 개미의 대비가 기발하고 재미있다. 이 젊은 시인은 이런 해학적이면서도 텁텁한 막걸리 같은 풍경을 곧잘 그려낸다. 문명 이전의 샤머니즘적인 세계도 시인의 눈에 자주 포착된다.
봉산댁이 담장 너머로 나를 키운 여자라는 표현이 무슨 뜻일까?
젖꼭지를 까만 개미로 생각하던 한 소년의 성장기로 이 시를 읽어도 좋을 것이다. 봉산댁이 아슬한 게 아니라 담장 너머로 이웃집 여자의 목욕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소년이 더 아슬아슬했으리라.
안도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