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문태준 '개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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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처음에는 까만 개미가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춰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

젖꼭지가 가을끝물 서리맞은 고욤처럼 말랐다

댓돌에 보리이삭을 치며 보리타작을 하며 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

해 다 진 술판에서 한 잔 걸치고 숯처럼 까매져서 돌아가던 여자

담장 너머로 나를 키워온 여자

잔뜩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이 아슬하다

- 문태준(1970~)의 '개미'

저 1930년대의 뛰어난 시인 백석을 오늘날 다시 만난 듯하다. 까만 젖꼭지와 개미의 대비가 기발하고 재미있다. 이 젊은 시인은 이런 해학적이면서도 텁텁한 막걸리 같은 풍경을 곧잘 그려낸다. 문명 이전의 샤머니즘적인 세계도 시인의 눈에 자주 포착된다.

봉산댁이 담장 너머로 나를 키운 여자라는 표현이 무슨 뜻일까?

젖꼭지를 까만 개미로 생각하던 한 소년의 성장기로 이 시를 읽어도 좋을 것이다. 봉산댁이 아슬한 게 아니라 담장 너머로 이웃집 여자의 목욕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소년이 더 아슬아슬했으리라.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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