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의 안영은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정치가였다.
당시 사치한 제나라의 풍습을 검소하고 소박한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논어의 '공야장(公冶長)' 편에서는 공자(孔子)가 그를 일러 '남과 잘 사귀어 오래되어도 남을 잘 공경하였다' 고 칭찬하는 기록이 나올 정도였다.
*** 만신창이 된 매스컴 싸움
그러나 안영은 뛰어난 정치가이면서 또한 꾀가 많은 지략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술수에 능한 인물인가를 나타내 보이는 일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당시 제나라의 임금인 경공(景公)에게는 세 무사가 곁에 있어 호위를 맡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사들은 임금의 신임과 백성들의 존경으로 날이 갈수록 안하무인이 돼 제멋대로 행동했다.
그들을 그냥 두어서는 큰 화근이 되겠다 싶어 안영은 경공에게 그들을 제거할 것을 권유했다. 경공도 그 제안에는 찬성했지만 그들의 힘이 워낙 강성해 제어하는 과정에서 난동을 부릴 것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안영이 묘한 꾀를 냈다.
즉 세 명의 무사에게 복숭아 두 개를 하사하고는 서로 공을 따져보아 그 중 공이 많은 두 사람이 한 개씩 나눠 먹도록 어명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자 세 무사는 서로 자기의 공이 훨씬 더 많다고 다투다가 결국은 세 사람 모두 죽어버리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면 꾀를 낸 안영이 뛰어난 인물인지, 아니면 한갓 과일에 불과한 복숭아를 가지고 결국 목숨을 잃은 세 무사가 어리석다고 할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복숭아 두 개로 세 사람을 죽인다' 는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란 성어는 여기에서 태어났으며 이는 곧 교묘한 꾀로 손 하나 대지 않고 상대방을 자멸시키는 일을 비유하는 말인 것이다.
최근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맞물려 행정규칙으로 신문고시를 시행하는 것은 엄연한 언론탄압이라는 주장으로 도하 각 신문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이에 정치공세까지 가세해 언론개혁이냐, 아니면 사상 유례없는 언론탄압이냐 하는 공방은 점점 가열되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신문사와 신문사간의 비난, 또는 TV방송과 신문사간의 상호비방.고소와 같은 전에 볼 수 없는 극단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A신문은 B신문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기사로 비난하고 있으며, C방송에서는 노골적으로 D신문을 비방하고 있는 것이다. D신문은 또한 E방송을 물어뜯고 있어, 결국 소금 역할로 사회의 공동선을 이끌어 나가야 할 언론매체들은 서로를 치고받는 난투극으로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서로 공이 많다고 주장하면서 복숭아를 먹으려고 싸우다가 결국 모두 죽어버리는 어리석은 세 사람의 무사와 다름이 없는 행위인 것이다.
오늘날의 언론은 막강한 힘을 가졌던 세 사람의 무사 입장과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또한 그 무사들의 호위 덕분으로 왕위에 오른 경공이 그들을 그냥 두어서는 큰 화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과 결국 언론의 덕으로 최고 통치자가 될 수 있었던 오늘날의 정치권이 막강한 힘을 가진 세 무사와 같은 언론을 약화시키려는 방법으로 복숭아 두 개를 서로 나눠 먹게 하는 안영의 꾀를 연상시키는 방법을 쓰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금 기능을 버릴 순 없어
복숭아 두 개를 쟁취하려는 신문사와 방송국간의 싸움들은 결국 제2의 정부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의 신뢰를 한없이 동반 추락시키는 돌이킬 수 없는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 사회를 정화시키는 소금 역할을 하고 있는 언론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 것인가.
그런 소금은 아무 데도 쓸 데 없어 밖에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 아닐 것인가. 서로를 비난하고, 물어뜯고, 고소하고, 상해함으로써 결국 손 하나 대지 않고 세 무사 모두를 자멸시킨 복숭아 두 개. 그 복숭아의 실체에 대해 이제 전 매스컴은 이전투구의 싸움에서 벗어나 직시할 때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 그 두 개의 복숭아는 다만 복숭아에 불과할 따름이다. 더 이상 안영의 꾀에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다.
최인호 <작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