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씨름] 백승일, 백두장사 호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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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사나이의 눈물.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백승일(25.LG)은 차오르는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숱한 좌절과 방황 끝에 맛보는 정상의 감동 때문이었다.

그 승리는 모래판의 영원한 라이벌 이태현(현대)을 연장 접전 끝에 누르고 따낸 것이어서 더욱 극적이었다.

'모래판의 풍운아' 백승일이 1996년 10월 이후 4년 7개월 만에 백두급 정상에 복귀했다.

백선수는 4일 경남 거제체육관에서 벌어진 2001 세라젬마스타 거제장사씨름대회 백두급 결승에서 동갑내기 라이벌 이태현을 3 - 2로 꺾고 정상에 올라 '씨름천재' 의 화려한 부활을 만천하에 알렸다. 2 - 2로 맞선 마지막판, 0 - 2로 뒤지다 내리 두판을 만회한 이태현은 승리를 결정지으려는듯 서둘러 밀어치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백승일은 '천재' 다웠다. 그는 중심을 뒤로 옮기며 밀고 들어오는 이태현을 뿌리치는 순발력을 발휘했고 이태현은 자신의 힘을 다스리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93년 청구씨름단 시절 열일곱살의 나이로 씨름판을 평정하며 천하장사에 올랐던 백승일은 97년 왼쪽무릎 수술과 팀 해체로 98년 진로, 99년 삼익, 2000년 신창을 떠돌았다.

신창 시절에는 한때 은퇴를 선언, 자유계약선수로 풀렸다. 그러나 씨름에 대한 그의 열망은 결국 재기를 택했고 지난해 10월 LG 유니폼을 입고 샅바를 다시 잡았다.

"나죽고 너죽자는 각오로 태현이를 상대했다" 는 그의 말처럼 이태현(경북 김천)과 백승일(전남 순천)은 피할 수 없는 영.호남 씨름의 라이벌이었다.

94년 청구 소속으로 부산 천하장사 결정전에서 맞붙어 석연찮은 이태현의 우승 이후 이태현은 탄탄대로를 걸었고 백승일은 그늘을 떠돌았다.

백승일은 "집에 계신 어머니도 아마 울고 계실 것이다. 오늘은 내 생애 최고의 날이며 더 이상 좌절은 없다" 며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거제=이태일 기자

◇ 최종 순위〓①백승일(LG) ②이태현(현대) ③김경수(LG) ④김영현(LG) ⑤윤석찬(현대) ⑥김동욱(현대) ⑦권오식(현대) ⑧염원준(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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