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인생 망가져도 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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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아라비아에 이런 우화가 있다. 개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우리들보다 멍청한 동물이 있다. 바로 인간이다. 인간들을 일 시켜먹고 우리는 먹고 놀자. "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등으로 상당수 독자를 확보해온 저자 김지룡(일본문화평론가.사진)은 새 단행본 『인생 망가져도 고!』에서 근면함과 사회적 성취를 채근해온 우리사회의 통념을 정면에서 비웃는다.

외려 '그 반대로 사는 것이 좋다' 는 제언을 담은 이 책에서는 1960년대 이후의 산업사회 윤리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 아마도 히피적 정서라고 이름붙일 만하다 - 세대들의 새로운 등장이 느껴진다. 이 신간은 우선 유쾌하다. 그 건 고정관념의 눈치를 보지 않는 솔직함 때문이다. 책의 장절(章節) 제목에서 그 점이 보다 분명하게 느껴진다.

'명예보다는 널널한 삶이 좋다' '체면은 함정이다' '쓸데없이 가방 끈 늘이지 마라' '이젠 좀 대충 살아라' 'B급으로 놀아라' …. 즉 40대 초반의 저자는 영화도 저예산 영화인 B급이 더 재미있듯, 인생도 그렇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에게 한 대학교수가 모대학 일본학과 겸임교수 자리를 제의했다. 그러자 김지룡은 거꾸로 제안한다.

"그보다는 교직원으로 채용해주시죠. "

그에겐 교수 타이틀보다는 스트레스 안받고 즐길 수 있는 교직원이 좋다는 것이다.

실업자란 것도 노동 과잉의 시대에 모두가 정규직에 매달려서 생기는 현상이니만큼, 차라리 비정형의 노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내용에 다소 거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괜한 체면과 엄숙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는 설득력 있는 글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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