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녹슨 총 들고 다시 한국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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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터키에서 날아온 사진 한 장, 짧은 사연이 그 날 밤의 감동을 되새기며 나를 적이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날 밤 우린 터키 참전 용사를 위한 국민 감사의 밤을 열었다. 한 가족이 노병 한 분씩을 초청하는 형식이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작은 선물과 꽃다발을 노병들 목에 걸어 드리고 품에 안겨 재롱을 떨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들과 함께 테이블마다 웃음꽃이 피어났다. 함께 사진도 찍으면서 이렇게나마 감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우리 집에도 똑같은 사진을 걸어 놓았습니다. 비록 이 노병은 가고 없어도, 먼 훗날 당신의 손자 민호가 자라 터키의 우리 집을 찾아올 때 이 사진을 보며 감격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세대를 걸친 우리의 우정은 영원할 것입니다. " 그날 밤 아이를 안고 찍은 노병의 모습이 새삼 그립다. 그럼요! 우리의 우정은 영원할 것입니다.

짧은 방한 일정에 많은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어떤 공식행사보다 한국 가정이 베푼 우리의 조촐한 잔치가 더 감동적이었다. 노병들의 주름진 얼굴엔 정녕 행복한 웃음이 넘쳐났다. 간간이 흘리는 감동의 눈물과 함께. 잔치가 무르익을 즈음, 대표가 인사를 했다.

"한국의 형제 가족 여러분, 감사합니다. 50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를 잊지 않고 이렇게 따뜻이 맞아주신 게 고맙고, 지난 번 지진 때 보여주신 한국민의 정성은 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금 활동이 터키 TV에서 방영되던 날, 한국전 참전 용사라는 사실이 그날 만큼 자랑스럽던 적이 없었습니다.

거국적인 모금은 이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었습니다. 피로 맺은 형제국임을 확인했습니다. 50년 만에 한국에 와보니 그 폐허 위에 기적을 이루어 놓은 걸 보면서 아, 우리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으로 무척이나 기쁩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요. 하지만 만의 하나 또 그런 불행이 닥친다면 비록 노구지만 녹슨 총을 다시 꺼내 들고 한국으로 달려 올 것이오. 제2의 조국, 한국을 위해…. " 터지는 박수 소리에 그 이상 들리지도 않았다. 그도 감격에 겨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모두의 눈가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어느 누구도 이보다 더 감동적인 연설을 들어본 적은 일찍이 없었으리라.

그날 밤 어깨동무하고 부른 우스키달라, 아리랑 합창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터키인에게 한국은 형제 이상이다. 한국에서 왔다면 길에서도 덥석 껴안는다. 터키 어느 산골에서도 '코래리' 라는 간판이 붙은 상점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지구상에 우리가 세계 일등 국민으로 대접받는 곳도 여기뿐이다.

지난번 한.터키 친선협회 방문에서도 우린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니데' 라는 작은 마을, 우리 회원을 각 가정으로 분산 초청해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그 집 친척은 물론이고 이웃까지 모두 찾아왔다. 밤을 구워 들고, 떡을 부쳐오고 모두가 제 집 손님처럼 지극한 정성이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눈으로, 가슴으로, 밤이 이슥토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튿날 작별의 장, 아쉬워 부둥켜안은 채 헤어질 줄 몰랐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버스에 오르는 일행의 눈이 모두 부어 있었다. 하룻밤에 그리 깊은 정이 들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한국과 터키의 깊은 심성 저변에 흐르는 공통의 정서다.

가는 곳마다 황송하리만큼 환대를 받았다. 기립박수로 맞기도 했고 우리 테이블에 와인을 보내주는 시민도 있었다. 이제 여행의 흥분도 끝났고 노병들도 떠났다. 한국에의 사랑과 뜨거운 우정을 우리들 가슴에 심어놓고 그들은 떠났다. 그들을 떠나 보내고 왜 이리 부끄러운지 마음이 무거웠다. 그간 우린 발등에 불 끄기가 급해 이 뜨거운 우방을 잊고 지낸 건 아닌지 새삼 송구스런 생각이 든다.

눈이 내리는 새벽 앙카라의 '한국 공원' , 전몰 장병의 이름이 새겨진 충혼탑 앞에 일행은 무거운 마음으로 섰다. 모두가 꽃다운 나이다. 무엇을 위해, 누굴 위해 이들은 그 먼 땅에서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쳐야 했을까. 이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지켜진 땅, 그 땅에 이렇게 살면서 우린 얼마나 그들의 넋을 기리고 감사했던가. 부끄럽고 송구스런 마음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탑신에 새겨진 그들의 이름을 어루만지면서 우리의 묵념은 끝날 줄 몰랐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 터키의 젊은 영령들이여, 터키 국민이여,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테세큐르 애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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