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에 대한 국내 학계의 움직임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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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세기 후반 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의 새로운 흐름을 아우르는 말이 바로 '문화사(Cultural History)' 혹은 '신문화사(New Cultural History)' 다.

다양한 연구방법의 유사성을 걸러보니 공통분모로 엮이는 게 '문화' 였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한마디로 민중들의 시시콜콜한 문화도 역사를 이끌어온 힘이었다고 보고, 그것들의 사료적 가치를 높이 인정하려는 태도다.

한국에 이런 신문화사 연구방법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96년 한국교원대 조한욱 교수는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과 린 헌트의 『문화로 본 새로운 역사』를 거푸 번역.출간하며 이를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그해 이화여대에서는 이화사학연구소 주최로 '신문화사, 새로운 역사학인가' 를 주제로 학술세미나가 열려 소장 연구자를 중심으로 세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제 발표자는 조한욱 교수를 비롯해 부산대 곽차섭.서강대 임상우.이화여대 조지형 교수 등이었다.

서양사 전공자들이 주축을 이룬 신문화사 연구 그룹은 지난해 '문화사학회' 를 창립, 연구 수준과 깊이를 심화시켜나갈 토대를 마련했다.

이 학회의 회원은 주명철(한국교원대) 회장을 비롯해 조한욱.임지현(한양대).임상우.조지형.황혜성(한성대)교수와 김기봉(성균관대 강사).김현식(한양대 강사)박사 등 30~40대 소장.중견학자 80명(연구회원 50명.일반회원 30명)이다. 서양사 분야의 대부인 차하순 교수로부터 학문적 세례를 받은 서강대 출신들이 신문화사 학맥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게 특징이다.

학회 발족과 함께 문화사학회는 지난해 반년간 학회지인 『역사와 문화』도 창간해 이미 제1.2호(푸른숲)를 냈다. 그동안 출판사가 바뀌어 이달 안으로 제3호(푸른역사)가 나온다. '민중문화사' 를 주제로 한 제3호에는 국사학계의 성과가 반영될 예정으로, 서울대 규장각의 김호 박사가 18세기 피의자 조서인 '검안(檢案)' 을 주제로 글을 발표한다.

金박사 외에 서강대 백승종 교수가 신문화사 연구방법을 한국사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임지현 교수는 "아직 신문화사는 서양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되는 단계에 있다" 며 "이를 적용한 국사학계의 연구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고 말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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