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평양 청년축전서 북한 인권 개선 촉구 시위하다 체포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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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무센 총리가 최근 서울 인사동 어느 한식당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북한은 절대 권력자만을 추종하도록 국민을 통제하는 폐쇄적인 국가였다.”

라스 라스무센(46·사진) 덴마크 총리는 자신이 청년 시절 과거 직접 겪었던 북한 체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최근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한 라스무센 총리는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개했다. 그는 “1989년 평양에서 열렸던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며 “나는 당시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개막 행사에서 시위를 벌여 북한 당국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라스무센 총리는 20대 초반에 정치를 시작해 덴마크 자유당 부총재, 내무보건부 장관, 경제부 장관 등을 지낸 뒤 2009년 총리에 올랐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시 평양을 방문했던 이유는.

“동서 냉전시기였던 89년 나는 덴마크 자유당 청년당원 대표를 맡고 있었다. 당시 덴마크 내 사회주의 계열 정당과 단체들이 평양에서 열리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편집자 주: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임수경씨도 참가) 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행사에는 원래 사회주의 국가 출신의 젊은이들 모임이다. 내가 소속된 자유당은 중도 우파 성향이지만 논쟁 끝에 평양 축전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85년 모스크바 축전에도 참가했다. 평양 방문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이미 모스크바 축전에서도 우리 당 참가자들은 아프가니스탄 침공 반대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평양 시위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다면.

“숙소였던 고려호텔에서 시위를 준비했다. 시위 물품을 구하기 어려워 침대 시트를 찢어 ‘북한 당국은 인권 상황을 개선하라’는 글을 썼다. 이를 들고 김일성 경기장을 찾았다. 오프닝 행사가 시작할 무렵 시트를 펼쳐들고 시위를 벌였다. 즉시 북한 경비원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우리 일행은 조사를 받은 다음 가까스로 풀려났다. 당시 조사를 받으면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위협에 다소 겁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 북한 측은 우리에게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2주 정도 북한에 더 머물다가 귀국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무기 개발을 우려하고 있는데.

“북한의 핵개발은 일부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다. 현재 국제사회가 북한을 압박하고 있지만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럽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좀 더 단호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한국 방문의 목적은.

“녹색 성장과 신재생 에너지 개발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덴마크의 경우 70년대 오일쇼크를 겪은 뒤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 개발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전체 전력소비량의 30%를 풍력에서 조달하고 있다. 덴마크는 이 분야에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정보기술(IT) 등 첨단 기술과 접목시킨다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방한에서 카이스트(KAIST) 등과 인력교류 확대에 합의했다.”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거는 기대는.

“우선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앙인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G20 국가들의 노력과 회의 개최국인 한국의 역할을 기대한다. 한국은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로 개도국과 선진국 간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최근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다른 나라에 대한 적극적인 원조에도 나섰으면 한다. 덴마크는 세계 5위권의 공적개발원조(ODA)국가다. 올해도 국내총생산(GDP)의 5.83%를 개도국 지원에 사용할 계획이다. 이번 방한 중 이명박 대통령과 개도국 지원 노하우와 관련해 의견을 나눴다.”

-한국과 유럽연합(EU)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마무리되고 있는데.

“자유무역은 글로벌 트렌드다. 유럽의 소비자들은 한국산 전자 제품과 자동차의 품질을 인정하고 있다. FTA가 완료되면 유럽인들이 좀 더 쉽게 한국산 제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유럽에도 적지 않은 혜택이 있다. 덴마크의 경우 한국에 고품질의 식료품을 수출하고 있다. FTA를 계기로 더욱 많은 제품이 한국으로 수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한·EU FTA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코펜하겐에서 기후변화 정상회의가 열렸는데.

“코펜하겐 회의의 목표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기후변화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완전한 합의 도출하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과 인도가 코펜하겐 협정에 서명했다.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거대 신흥공업국들의 이 같은 움직임으로 올해 말 멕시코에서 열리는 회의에서는 좀 더 생산적인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글=최익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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