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안 표결파행] 민주당 정국운영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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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일 새벽 서울 여의도 맨해튼 호텔 커피숍.

국회 본회의에서 이한동(李漢東)총리 해임건의안이 무산된 뒤 이상수(李相洙)총무 등 민주당 원내 사령탑 멤버들이 '평가회' 를 열었다.

▶배기운(裵奇雲)부총무=해임건의안은 3여(與)가 모두 투표했어도 부결됐을 것이다.

▶이상수 총무=….

▶裵부총무=해임건의안에 앞서 표결한 인권법(한나라당안)은 1백37 대 1백36으로 이겼다.

▶李총무=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한표 차 아니냐. 우리당 의원들이 커피 마시러 갈 때마다 쫓아나갔다. '어디 가느냐. 앉아 있으라' 고 했다.

정말 초조했다. 기립투표를 할 때 한명만 자리를 비웠더라면…. 의원 겸직 장관이 한명이라도 외국에 출장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부로 표결하면 안되겠더라. 매사에 겸손해야겠다. 정말 험난한 길이 될 것 같다.

인권법 표결은 3당연합(1백37석=민주 1백15+자민련 20+민국당 2)이 한나라당과 '무소속' 연합(1백33+3석 김용환.정몽준.강창희 의원)에 간신히 이긴 것이다. 평소 투표하지 않는 이만섭(李萬燮.민주당 소속)의장까지 이례적으로 가세했다.

때문에 'DJP+α' 의 살얼음판 같은 승리는 민주당 지도부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민주당은 1일 "한나라당의 발목잡기 정치에도 불구하고 개혁입법 처리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 (田溶鶴대변인)고 발표했다.

그러나 핵심 당직자는 "향후 핵심 입법 처리나 야당이 제출한 각료 해임건의안 표결에서 묘안을 짜내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 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 '편법.변칙 시비' 가 이어질 경우 민심의 이탈로 정국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 며 "단 한건이라도 3여 공조 표결이 무너진다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짜놓은 'DJP+α' 의 임기말 정국관리는 위기를 맞을 것" 이라고 우려했다.

한나라당은 이한동 총리 해임건의안을 다시 낼 것을 검토 중이다. 이번에 처리하지 못한 부패방지법.돈세탁방지법, 그리고 재정관련 3법 등 여권이 시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도 쌓여 있다. '3여(與)관리' 도 민주당을 어렵게 하는 대목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젠 자민련과 민국당의 눈치를 더욱 볼 수밖에 없는 상황" 이라며 "자민련이 반대하는 보안법 개정, 모성(母性)보호법 제정을 강권할 수 있겠느냐. 자칫하면 민주당의 이념.정체성에 대한 시비가 나올 수 있다" 고 지적했다.

특히 선별투표라는 편법.변칙 시비는 '강한 여당' 의 이미지 관리에 상처를 줄 것이라는 점을 여권은 의식하고 있다. 여기에다 한나라당이 '이회창 대세론' 을 다시 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될까 걱정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 '무소속' 3인이 한나라당 쪽에 선 것이 'DJP+α' 의 장래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고 경계했다.

최훈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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