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사교육 편제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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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을 계기로, 제7차 교육과정에서 중.고등학교 국사교육이 축소되는 데 대해 비판적 여론이 높아지고 있으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예정대로 내년부터 개정된 교육과정을 시행할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교육부 담당자는 그 대신 고등학생들로 하여금 가급적 한국 근.현대사 과목을 많이 선택하도록 권장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 근.현대사 수업약화 확실

그러나 교육부의 이러한 방침은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대로 학교 국사교육의 약화를 가져올 것이 확실하며, 논리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한국 근.현대사 선택을 권장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이 선뜻 이를 선택할지는 의문이다.

대학입학에 모든 공부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다른 사회과 과목에 비해 학습 부담이 많은 한국 근.현대사를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은 현재도 특정 교과목에 학생들이 몰리고 있는 상황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학생의 선택 폭을 넓힌다는 제7차 교육과정의 기본방침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수정 고시할 수 없다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한국 근.현대사를 듣도록 권장하겠다는 것도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중.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은 학생의 희망보다는 교사의 수급이나 수업시수 조정과 같은 다른 요인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많은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동안 우리 사회와 삶의 형성이나 변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역사를 거의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국사는 정치사 위주의 통사로 구성돼 있다. 근.현대사의 경우 다른 분야의 역사는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 고등학교 1학년의 국사는 거의 대부분 전근대사로 구성돼 있으며, 근.현대사는 정치사만 형식적으로 포함돼 있다.

결국 한국 근.현대사를 선택하지 않는 학생들은 근.현대의 경제.사회.문화에 대해 전혀 배우지 않고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당연히 근래 강조되고 있는 인간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담은 사회사나 생활사에 대한 교육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할 실정이다.

교육부는 제7차 교육과정의 틀을 조금도 손 대지 않는 범위에서만 국사교육의 문제를 다루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교육부 스스로도 곳곳에서 말하고 있듯이 교육과정은 학교 교육을 위한 하나의 기본적인 지침일 뿐이지 모든 교육문제를 결정하는 신성불가침의 규정은 아니며, 변경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는 더욱 아니다. 제7차 교육과정은 교과별 이기주의를 배제한다는 명목으로 교과 편제와 수업시수 결정에 각 교과의 담당자를 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만들어졌다.

더구나 신자유주의적 논리나 내용상의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교사나 학부모 단체를 비롯한 여러 사회단체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제7차 교육과정의 시행을 유보 또는 중지하거나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용성과 기능성만을 강조하는 제7차 교육과정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역사를 배우는 목적도 현재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나 기능(skill)을 기르는 데 둬야 한다.

*** 7차교육과정 손질 금해

역사적 사실은 이를 위한 하나의 소재로만 다루면 되고 역사의 흐름이나 변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역사를 보는 관점 등은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역사는 현재의 사회현상과 통합적으로 다루면 된다는 사회과 통합의 논리도 이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역사교육의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우리의 삶이 사회와 역사의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으며 거꾸로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이러한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주체의식을 기르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역사적 변화의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과정에 인간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앎으로써 형성된다. 특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나 삶의 형성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근.현대사 교육은 이러한 의식을 기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제7차 교육과정의 국사교육 편제를 재수정해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金 漢 宗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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