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항, 국방부 코앞서 휘젓고 다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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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병역비리를 주도한 박노항 원사는 1998년 5월 잠적 때부터 서울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에서 살았으며 최근까지 대낮에도 아파트 부근을 활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아파트와 인접한 한강 둔치에서 새벽 조깅을 하고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등 부근을 헤집고 다닌 것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때문에 초유의 병역비리 주범을 놓고 3년 동안 벌여온 군.검 합동수사반의 추적이 허술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朴씨의 아파트는 국방부에서 자동차로 불과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

◇ 동네 목격자들=지난 25일 朴원사 검거 소식이 보도되면서 그를 보았다는 목격자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그가 은둔해온 아파트 단지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10년째 계란을 파는 金모(43.여)씨는 26일 "나이가 꽤 든 남자가 머리를 여자처럼 길게 기르고 다녀 눈에 띄었는데 신문에 난 사진을 보니 그 사람이더라" 고 말했다.

또 아파트단지 입구 D식당 주인 劉모(51.여)씨도 "보도 후 생각해보니 수개월 전까지 朴씨를 거리에서 여러번 봤다" 고 말했다.

부근에서 H당구장을 운영하는 崔모(45.여)씨는 "동네에서 여러번 본 사람이라 얼굴을 뚜렷하게 기억하며 지난해에는 머리가 그 정도로 길지는 않았다" 고 했다.

그러나 서영득 국방부 검찰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朴원사가)도피 초기에는 오전 4시30분 부근 한강 둔치에 나가 운동도 했지만 수사망이 좁혀오자 전혀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 고 발표했다.

◇ 잠적 때부터 이촌동 은둔=수사반은 "朴원사가 도피 초기인 98년 5월부터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 33동 6층에 살았으며 지난해 2월 같은 동 1113호(검거 장소)로 이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 밝혔다.

취재팀 확인 결과 33동의 6층 14가구 중 지난해 2월 입주자가 바뀐 곳은 6××호 뿐이었다. 이 집은 崔모씨 소유로 崔씨가 96년 미국으로 떠나면서 국내 친척이 전세계약을 대신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석달간 비어 있던 이 집에 지난해 5월 입주한 金모(29)씨는 "빈집 상태에서 전세계약을 했다" 며 "벽지가 심하게 뜯어져 있는 등 집수리가 전혀 안된 상태였다" 고 말했다.

한편 이 33동에는 우연히도 한미연합사 소속 장성급 관사가 6층과 13층에 한곳씩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도피자금 관리=수사진은 朴원사의 집에서 수표 6천만원과 현금 8백만원 등 6천8백만원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수사 관계자는 "그가 1억7천여만원을 갖고 도피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기관에 朴원사의 계좌를 찾아본 결과 그의 명의로 된 통장은 단 한개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누군가 그의 재산을 관리해왔거나 스스로 집안에 돈을 보관해왔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 "여장 안했다" =朴원사는 조사과정에서 여장(女裝)여부에 대해 "여장은 하지 않았으며 누나가 집에 여자가 없으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며 구두 등을 갖다 놓았다" 고 진술했다.

전진배.강정현.김태성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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