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목되는 고이즈미의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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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 자민당의 제20대 총재로 선출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전 후생상이 이끄는 일본의 새 내각이 오늘 출범한다.

하드 록 음악에 탐닉하고 특유의 베토벤 머리 스타일을 고집하는 59세의 고이즈미 차기 총리는 파벌과 서열이 지배하는 일본 정계에서 튀는 언행으로 '괴짜(變人)' '독불장군' '외로운 늑대' 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미지에 걸맞게 그는 밀실 정치와 나눠먹기식 파벌 정치의 청산과 과감한 구조개혁을 내세워 밑으로부터 돌풍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반세기 가까운 자민당의 계보 정치에 대한 환멸과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이 전혀 색다른 인물을 총리로 미는 '혁명' 을 연출했다고 본다. 그가 과연 약속대로 파벌 정치의 한계와 국내외 제약 요건을 뛰어넘어 구조개혁의 길을 열어젖힘으로써 일본에 '잃어버린 10년' 을 되찾아 줄지 관심거리다.

우리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가 한창인 상황에서 고이즈미 내각이 출범하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이미 한국 등 주변국들의 교과서 재수정 요구는 부당하며 이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출병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위해 헌법 수정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들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에 총리 자격으로 공식 참배하는 게 마땅하다는 말도 했다.

일본의 우경화에 정치적으로 편승하려는 대중주의적 태도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가 표를 의식해 오른쪽 날개로만 날려고 한다면 결국 정치적 포퓰리스트로 끝나고 말 것이다.

21세기 일본에 진정으로 필요한 정치인은 대중선동가가 아니라 올바른 역사인식과 국제적 균형감각을 갖춘 개혁가다.

그래야만 일본은 과거사의 굴레와 지난 10년의 위기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지도적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 오늘 출범하는 고이즈미 내각이 허망한 신기루로 끝날지, 일본 역사에 새 장을 여는 변혁의 조타수가 될지 우리는 냉정한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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