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을 살리자] 4. 소외된 교육·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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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5일 오전 8시30분. 충남 천안시 안서동.

서울 강남.잠실.사당역 등지에서 학생을 가득 실은 관광버스들이 몰려 들어온다. 대학생 통학버스다. 안서동에는 단국대 천안분교 등 다섯 개의 대학이 몰려 있다. 이 일대의 주민은 2천8백여명. 반면 대학생 수는 3만5천여명에 달한다.

천안.아산지역에 있는 4년제 대학은 13개. 학생은 9만5천여명으로 인근 홍성군의 인구와 비슷하다. 이처럼 대학이 많은 이유는 천안.아산지역이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수도권 이외 지역이면서도 서울 학생들이 통학하기가 비교적 편리하기 때문이다.

천안대 이천수 총장은 "공장들이 수도권 배치 억제정책때문에 천안에 많이 자리잡은 것처럼 대학도 그렇다" 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방 중소도시의 평균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천안시 인구는 1995년 33만명에서 6년 만에 42만명으로 늘었다.

◇ 외면당하는 '서울 상대' (서울에서 상당히 먼 대학)=그러나 서울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대학의 공동화 현상은 심각하다.

부산에 있는 A대학 물리학과는 중국의 자매결연 대학에서 조선족 학생 두명을 가까스로 유치했다. 물리학과 교수는 14명인데 석.박사과정 학생수가 모두 7명에 불과해 학과 폐지가 거론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대학원 강의당 수강생이 강의 개설 기준에 못미치는 한두명뿐이어서 '특인(특별인가)' 을 받아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대학 관계자는 "조선족 유학생의 생활비는 학교에서, 학비는 교수들이 보조한다" 고 귀띔했다.

경북에 있는 사립 K대의 학생 충원율은 49%, 전북 S대의 충원율은 52%다. 전남지역 대학들은 지난해 3천9백27명의 신입생 자리가 비었다. 미충원율이 25.7%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서울 지역의 미충원율은 1.1%다.

문제는 이같은 공동화(空洞化)지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황인성 선임연구원은 "정원을 못채우는 대학들이 몰려 있는 벨트가 천안 바로 아래 지역에 형성돼 있다" 고 말했다.

영.호남 지역의 대학은 학생들이 계속 수도권으로 빠져나가 미충원율이 해마다 높아진다는 것이다. 전국 대학의 미충원율은 1999년 5%에서 지난해 4.3%로 낮아졌다. 하지만 같은 기간 전남은 4.4%포인트, 경남은 5%포인트, 경북은 1%포인트가 높아졌다.

◇ 악순환의 고리=지방의 모 국립대 문헌정보학과 李모(42)교수는 "오늘도 서울 쪽 하늘을 바라보며 기회만 잡으면 미련없이 떠나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되풀이한다" 고 말한다. 그는 8년 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의 한 사립대학과 지금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는 지방에 있지만 국립대인 지금의 학교를 택했다. 李교수는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면서 "70년대만 해도 전국 대학 랭킹 중 상위권을 차지하던 지방 국립대들이 이제는 하나같이 시골대학이 됐다" 고 푸념했다.

전문가들은 "수능시험 성적이 전국 상위 5%에 속하는 지방의 우수학생 중 90% 정도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 고 추정한다.

반면 지방대는 지역출신 우수고교생의 진학률 감소→지방대 대학원 진학률 감소→취업률.대학연구능력 저하→지방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확산→우수고교생의 지방대 회피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묶여 있다.

◇ 영화관조차 없다=인구 3만4천여명인 강원도 인제군에는 영화관이 없다. 70년대 중반 이후 사라졌다.

주민들의 유일한 문화 휴식처는 인제군 문화관이다. 그러나 이곳에선 올 들어 지난달 초 '단적비연수' 가 단 한차례 상영됐을 뿐이다. 두번째 상영 일정은 다음달 중순께로 잡혀 있다.

사정은 인근 화천.양구군도 마찬가지. 전국의 기초자치단체마다 문화원이나 문예회관 같은 시설이 마련돼 있지만 대부분은 1년에 서너 차례 정도 '철 지난' 영화를 상영하는데 그친다. 인제군청 한 관계자는 "도내 군 단위 지역에서 음악회나 가요제 공연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고 했다.

문화관광부는 다음달부터 대형 이동영사장비를 갖고 '찾아가는 이동영화관' 을 운영할 계획이다. 전국 40여곳을 대상으로 잡고 있는데 와달라는 기초자치단체가 너무 많아 선정에 애를 먹고 있다.

◇ 꺼리는 지방 공연=가뭄에 콩 나듯 있는 연예인들의 지방공연. 거기에다 가끔 그들의 지방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까지 겹치면 주민들의 마음은 멍이 든다.

지난해 11월 충남 P시가 마련한 대형 축제에는 이례적으로 지역주민 5만여명이 몰려들었다. 인기 절정의 S댄스그룹의 공연이 며칠 전부터 예고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그룹은 "지방순회 일정이 촉박하다" 며 당일에 출연일정을 취소해 버렸다. P시 관계자는 " '지방이라고 무시하느냐' 는 주민들의 항의가 몇달간 이어졌다" 고 난감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기획취재팀〓민병관.전영기.최상연.정경민.신예리.김현기 기자, 경제부〓차진용 기자, 산업부〓신혜경 전문위원, 사회부〓음성직 전문위원.강홍준 기자, 문화부〓유광종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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