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88개 사찰 잇는 1400㎞ 오헨로, 1200년 역사 어린 순례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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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헨로는 시코쿠(四國)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산마루를 향해 가파르게 나 있기도 하고, 해안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끼고 돌기도 한다.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편안한 길도 있다.

‘오헨로(お遍路)’는 일본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순례길이다. 시코쿠(四國) 해안선을 따라 크게 한 바퀴 돌며 1400㎞나 이어진다. 일종의 불교 의례에서 비롯됐지만,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오헨로를 걷는 일본인은 오늘도 줄을 잇는다. week&은 9∼12일 사단법인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와 함께 오헨로를 걸었다. 직접 체험한 코스는 크게 두 개다. 하나는 시코쿠 동북쪽 가가와(香川)현 다카마쓰(高松)에 있는 84번 사찰 야시마지(屋島寺)와 85번 사찰 야쿠리지(八栗寺)를 잇는 코스고, 다른 하나는 시코쿠 서쪽 에히메(愛媛)현 도고(道後)에 있는 51번 사찰 이시테지(石手寺) 코스다. ‘진세이 오헨로(人生お遍路)’. 순례 도중 만난 글귀다. 인생사가 오헨로란 뜻일 터. 오헨로를 걷는 건, 길 위에서 일본의 정신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 기원

오헨로의 기원은 8세기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불교의 대표적인 종파 신곤슈(진언종·眞言宗)의 창시자인 고보다이시(弘法大師)가 시코쿠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수행했고, 그가 수행 중에 연을 맺은 곳에 사찰이 잇따라 들어섰다. 모두 88개나 됐다. 이 사찰을 차례로 방문하며 순례하는 전통이 생겼고, 이를 오헨로라 부르게 되었다. 일본 역사에서 오헨로가 처음 등장하는 건 12세기 무렵이고, 지금처럼 사찰 88개를 순례하는 방식이 굳혀진 건 16~17세기로 전해 내려온다.

오헨로는 ‘시코쿠 순례’로도 불린다. 시코쿠 섬 전체를 한 바퀴 돌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코쿠 사람은 오헨로를 자랑스레 여긴다. 고보다이시를 시코쿠에선 ‘구카이(空海)’라고도 하는데, 이는 ‘하늘과 바다’란 뜻이다. 순례 코스 곳곳에 고보다이시와 관련한 전설과 유물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일본인은 지금도 고보다이시가 오헨로에서 수행 중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 오솔길과의 차이

오헨로 순례자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에게 자신의 삿갓을 씌워주고 있다.

84번 사찰 야시마지(屋島寺)는 두 시간 걸려 올라가야 하는 산 위에 있었다. 일본어를 몰라도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전봇대에 붙인 화살표 스티커, 검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표석 등이 길 곳곳에서 순례자를 안내했다.

야사마지 오헨로는 언뜻 산 정상을 향해 난 등산로의 모습이었지만, 직접 걸어보니 여느 오솔길과 많이 달랐다. 모퉁이마다 작은 불상이 놓여 있다. 불상은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부처님이 혹여 추위로 고생하실까 싶어 부러 씌워놓은 것이란다.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빗자루도 인상적이었다. 수행을 위해 닦은 길이니, 늘 정갈하게 유지하려는 마음이 읽혔다. 그러고 보니 길 위에는 낙엽 한 장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야시마지 산문 입구에 작은 안내판 같은 게 서 있었다. 거기엔 야시마지를 순례한 사람의 이름과 횟수가 촘촘히 적혀 있었다. 9301번 야시마지를 순례한 사람도 있었다.

# 오헨로상

오헨로를 걷는 순례자를 ‘오헨로상(お遍路さん)’이라 부른다. 오헨로상은 흰 삿갓과 흰 장삼을 입고, 나무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전통 복장은 각각 고유의 의미가 있다. 흰 장삼은 섬뜩하게도 수의를 상징한다. 옛날엔 순례 중간에 죽는 사고가 많았단다. 그래서 차라리 수의를 입고 순례에 나섰단다. 흰 삿갓은 순례 도중 죽은 사람의 얼굴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 삿갓에는 ‘동행이인(同行二人)’이란 글귀가 적혀 있다. 고보다이시가 늘 함께 걷는다는 뜻이다. 나무 지팡이는 고보다이시를 상징한다. 그리하여 함부로 다뤄선 안 된다. 순례를 마치면 지팡이에 묻은 흙을 씻어야 하며, 잠잘 때는 머리맡에 세워놓아야 한다.

길거리에 오헨로상이 지나가면 일본인은 깍듯이 예우를 갖춘다. 먹을 것을 건네주기도 하고 공짜로 잠을 재워주기도 한다. 오헨로상을 접대하면 일본인은 자신도 선행을 쌓는다는 여긴다.

야시마지 경내에서 오헨로상을 만났다. 칠순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였는데 오른쪽 가슴에 ‘오사메우다’라 불리는 납찰(納札)을 뿌듯한 표정으로 내보였다. 금색 납찰엔 ‘다이센다쓰(大先達)’라 씌어 있었다. 오헨로를 모두 돈 사람 중에서 네 번 이상 돈 사람을 다이센다쓰라 부른다. 노인은 “오헨로를 모두 열 번 돌았다”며 순박하게 웃었다.

1 85번 사찰 야쿠리지에 서 있는 앙증맞은 안내판. 2 오헨로를 창시한 고보다이시 동상. 3 야시마지 경내에 있는 동물상. 4 오헨로 모퉁이에서 만난 털모자를 쓴 돌부처.


# 걷는 방법

오늘의 오헨로는 애초의 순례 방식과 거리가 있다. 사찰 순례가 오헨로의 본령인지라, 도로가 잘 닦인 코스는 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훨씬 잦아졌다. 코스 사이의 거리가 워낙 먼 것도 주요 이유다. 그렇다고 도보 순례의 전통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니다. 이번 순례에 동행한 시코쿠 관광추진기구 요시아키 미조부치 부본부장은 “도시를 옮겨다니는 건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이용한다지만 순례 사찰에 진입하려면 한두 시간은 족히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순례 사찰에서 드리는 예법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사찰에 도착하면 우선 산문 앞에서 본당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산문 안에 들어서면 꼭 작은 샘이 있다. ‘미즈야(水屋)’라 부른다. 미즈야에서 물을 떠 손을 씻는다. 왼손을 먼저 씻고 오른손을 씻는다. 이어 왼손에 물을 받아 입을 헹군다. 그리고 나선 곧바로 종루에 가서 두 번 종을 친다. 부처님께 아무개가 왔음을 알리는 행위다. 나중에 종을 치면 인연을 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다음에 본당 앞에 선다. 향을 올리고 작은 종을 다시 친 다음, 독경을 한다. 오헨로상 대부분이 ‘반야심경’을 읊는다. ‘마하반야바라밀다~’로 시작되는 독경 소리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차이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절차가 있다. 납경소에 가서 납경을 받는다. 사찰 한 곳을 순례하면 이렇게 하나의 납경을 받는다. 이 납경이 오헨로상의 경륜을 표시한다.

# 오헨로와 올레

일본은 오헨로를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처럼 세계적인 도보 여행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미 오헨로는 ‘산티아고 가는 길’과 홍보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해마다 평균 30만 명 이상이 이 길을 돈다. 하지만 스스로 순례에 나선 일본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이 일본 관광 당국은 불만이다. 시코쿠 관광추진기구가 제주 올레와 공동 프로모션을 추진한 까닭이 예 있다.

직접 경험한 오헨로는 도보 여행지로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천 년이 넘는 역사는 굽이마다 숱한 전설을 묻어두었고, 수많은 문화재를 물려주었다. 오헨로가 시코쿠 곳곳의 관광 명소를 관통하는 것도 강력한 장점이다. 이를 테면 51번 사찰 이시테지는, 3000년이나 됐다고 주장하는 일본 최고(最古)의 도고 온천을 가로지른다. 도쿠시마(德島)현 최남단의 24번 사찰 호쓰미사키지(最御崎寺)는 태평양을 바라보는 무로토(室戶)곶 위에 있어 빼어난 자연 풍광을 자랑한다.

제주 올레도 오헨로가 부러운 게 있다. 올레는 3년 남짓한 역사가 전부다. 올레가 한국을 대표하는 도보 여행지라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아직은 오헨로마냥 길 모퉁이마다 사연을 쟁여놓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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