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클럽] 주한 미군들 주말엔 영어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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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주한 미군이 초등학교 영어 선생님으로 나섰다.

미8군 인사행정사령부 소속 미군과 한국군 지원단(카투사)소속 장병 등 40여명이 지난달 10일부터 매주 토요일 서울 남산초등학교 3~6학년 여덟 학급에서 50분짜리 영어 수업을 맡고 있는 것.

올초 이 학교 허용환 명예교감이 친분이 있던 에릭 포터 사령부 여단장에게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보면 어떻겠느냐" 고 제안하면서 이같은 색다른 인연은 시작됐다. 평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던 포터 여단장은 즉시 수업을 담당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고 지난달 24일 자매결연을 했다.

포터 여단장은 "한국과 미국이 가까운 우방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어린이들은 영어와 미국 문화에, 미군은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보다 가까워지길 바란다" 며 기대를 나타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군인 선생님' 은 일반 사병부터 장교까지 다양하다. 수업은 학급당 미군 한 명과 한국군 한 명이 조를 이뤄 진행한다.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한국군 장병의 설명과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군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두 조로 나눠 격월로 수업을 맡기로 했지만 지난달 수업을 맡았던 선생님 중 몇 명이 계속 수업을 하고 싶다고 해 미군 선생님 두 명이 함께 수업에 들어가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휴일인 주말을 활용하다 보니 힘든 점도 많지만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면 절로 신이 난다" 고 입을 모은다. 6학년 1반을 맡은 매튜 병장은 "어쩌면 저렇게 잘하는지 모르겠다. 발음도 또랑또랑한 게 그저 놀랍고 기쁠 뿐" 이라며 제자들 자랑을 늘어놨다.

교과서가 있긴 하지만 수업 내용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는 않다. 교실마다 수업방식도 가지가지. 노래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기타를 들고 등장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호키포키 노래를 함께 부르며 이리뛰고 저리뛰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교실도 있다. 어느새 아이들은 복도에서 선생님을 만나면 스스럼없이 "하이(Hi)!" 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나서는 부모도 있을 정도다.

한국군 김정훈 일병은 "아이들이 보내온 편지를 받고 미군들이 참 기뻐한다" 며 "한국 생활에 조금은 무료해 하던 미군들에게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고 말했다.

사령부측은 부대 파티에 아이들을 초청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는 한편,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초등학생들과의 교류도 모색 중이다. 포터 여단장은 "양국 학생들이 편지나 서로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도울 계획" 이라고 말했다.

글.사진=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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