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익의 인물 오디세이] 사찰음식 연구가 선재스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아카시아꽃이 만발하면 꽃이 머금은 습기 때문에 산불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자못 감탄했는데, 사찰음식연구가 선재 스님을 만나니 아카시아꽃 튀김이 또한 별미란다.

『아함경』에 이르기를 "일체 제법은 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식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食自在 法自在)" 했으니, 머지 않아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벌들이 잉잉거리는 그 꽃 앞에서 '밥이란 무엇인가' 를 참구해 봄은 결코 손해날 일이 아닐 것이다.

'밥' 이란 무엇인가. 선재 스님에 따르면 '밥 곧 음식은 약' 이다. "되게 피곤하네" . 서울 안암동 보타사에 자리 잡은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마당에서 기자가 무심코 뱉은 이 말을 스님이 흘려 듣지 않았음을 안 것은 얼마 후 스님이 내놓은 차 때문이었다. 팔각접시에 받혀진 연꽃잔에 매화를 띄운 산초차였다. "매화 향은 정신의 피로를 푸는데 산초는 몸이 허했을 때 좋다" 는 설명이 뒤따랐다.

과거의 선사들은 섭식을 어떻게 했길래, 또 전래의 사찰음식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길래 옛 스님들은 장수하였을까가 선재 스님이 사찰음식을 연구하게 된 동기다. 결론은 절집 주위의 나무와 풀과 열매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고 먹는 모든 과정에는 약의 이치가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사찰에 빠짐없이 심어져 있는 벚나무, 소나무, 은행나무는 풍광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약효 때문이라는 것이다.

벚나무 하나만 봐도 껍질을 진하게 달인 물은 해소나 기침 치료에 좋고 속껍질 달인 물은 식중독에 효과가 있으며 벚나무잎에 음식을 싸두면 쉽게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사찰음식에 담긴 불교적인 뜻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받는 것이지요. 채식 위주의 습관은 생명 플러스 건강을 받아요. 사찰음식은 생명 플러스 건강 플러스 도(道)입니다. 곧 지혜를 주는 것이지요. 그때문에 금기식품이 있지요. "

잘 알다시피 불가에서는 육류, 어패류, 오신채라 하여 다섯가지 채소 곧 파, 마늘, 양파, 달래, 흥거(무릇)를 금한다. 여기에 술과 우유를 제외한 가공식품을 멀리 한다. 불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육류나 어패류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에 대한 자비심 때문에, 더군다나 해탈하지 못해 윤회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소가 될 지도 모르는 판에 그 고기를 어찌 먹겠느냐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 오신채는 왜 못먹게 합니까.

"우선 육류를 많이 하면 마음이 바같으로 치닫게 됩니다. 수행은 마음을 안쪽으로 집중해 지혜를 내야 하는데 그걸 방해하지요. 육류를 많이 먹는 아이들은 정신집중을 못해 가만히 못있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잖아요. 오신채는 냄새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마땅히 향기롭고 거룩한 데 있어야 하는데 냄새가 지혜를 방해하고 다른 스님들의 공부까지 지장을 주는거지요. 그리고 예전부터 스님들이 주로 산속에서 정진했는데 육류나 오신채를 먹으면 그 냄새를 맡고 호랑이가 찾아온다는 말도 있지요. "

- 그러나 병을 치료할 목적이라면 부처도 그런 금기식품을 허용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계가 있지요. 육류는 불견살(不見殺:내 눈으로 죽이는 것을 보지 아니한 것), 불문살(不聞殺:내 귀로 죽는 소리를 듣지 아니한 것), 불의위정살(不疑爲正我殺:나를 위해 죽였는가 하는 의심이 없는 것)세 가지입니다. 또 오신채도 예를 들어 동창이 나 마늘을 발랐다면 먼 곳에서 냄새가 다 빠진 뒤 깨끗이 목욕을 하고 옷에 향불을 쬔 다음 스님들들 있는 곳으로 와야 하지요. "

보타사를 찾은 날 스님은 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해 오색화전을 부쳤다고 했다. 냉이꽃, 꽃다지, 진달래, 제비꽃 등이 재료였다. 화전을 보지는 못했지만 모양이 곱고 화려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스님들은 옷도 먹물빛이고 식생도 검소해야 한다는데 화전이 너무 화려해 부처의 뜻에 어긋나지는 않습니까.

"단청이 화려한 것도 공양의 참 뜻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공양은 화려한 것이 더 신심을 담아냅니다. 부처님께 공양한 음식도 결국 대중들이 먹으니까 화려한 진심은 대중을 화려하게 대하는 것이 되지요. 부처님이 태어날 때 오색광영이 비쳤듯이 일상을 검소하게 사는 것은 무소유의 실천이지만 궁극의 경지는 화려한 것입니다. "

스님은 20세 때 출가를 결심하고 부모의 승낙을 얻기 위해 5년을 기다렸다가 25세 때 머리를 깎았다. 요리는 출가 전부터 솜씨가 좋았던지 가족들이 윷놀이를 하거나 할 때 스님은 잡채 따위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스님의 가족들은 어쩌다 스님을 보면 "그 때 스님께서 만들어주신 음식이 참 맛있었습니다" 라고 말한다고 한다. (존댓말은 부모라도 출가자에 대한 예의다. )

-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또한 스님의 음식 철학이라고 들었습니다.

"발우(스님들이 쓰는 그릇)공양을 예로 들지요. 발우에는 다섯가지 공덕이 들어있어요. 평등, 청결, 절약, 공동, 복덕입니다. 평등이란 글자그대로 모두 똑같이 먹는 겁니다. 청결 공덕은 자신이 먹을 것은 자신의 발우에 먹는다는 것이지요.

절약 정신은 자신이 받은 음식은 조금도 남기지 않고 먹는 것입니다. 또 공동 정신은 한 솥의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며 끝으로 복덕 정신은 이 음식을 만든 사람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도 매일 끼니마다 나의 그릇을 불가의 발우라고 생각하면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

- 사찰음식의 약효를 일반인들이 음식을 대하는 맛보다 중히 여기시는데 사찰음식의 맛은 어때요. 또 한의학과의 이견 같은 것은 없습니까.

"맛도 좋지요. 음식의 본질은 약이지만 맛없는 음식은 음식이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한의학자들은 사찰음삭의 성분을 보고 오히려 놀라워합니다. 전래돼온 음식이지만 이른바 궁합이라는 거지요. "

사찰음식의 맛은 사실 일반인들이 대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한 예로 속말에 "중이 고기 맛을 알면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 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본래 유래는 다르다는게 선재 스님의 설명이다. 스님들이 즐겨 먹는 나물 중에 '고소' 라는 것이 있다. 정식 명칭은 '고수' 인데 고소하다 해서 스님들 사이에서는 고소라고 불린는 것으로 이 나물 맛이 처음에는 비릿한게 영 이상하지만 먹으면 먹을 수록 그 참 맛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스님들이 고소 잎을 다 따먹고도 그 빈 대(고소의 줄기)까지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이 '빈 대' 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절집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사람이 금기식품인 육류를 먹다 '빈데' 까지 잡아먹는다는 우스갯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 발우공양의 효과 같은 스님 말을 들으니까 부처님이 요즘 말로 굉장한 건강관리사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그래요. 부처님은 걸식을 할 때 칠가식(七家食)을 하라고 가르쳤어요. 이는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이나 차별하지 말라는 가르침도 들어 있지만 또 음식은 골고루 먹으라는 뜻도 있어요. 집집마다 저마마 재료도 다르고 또 잘하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어서 일곱집을 다니며 걸식을 하면 요즘 말로 편식을 않게 된다는 거지요. "

- 사찰음식이 체로 전래돼 왔다지만 스님이 직접 개발한 것도 많겠군요.

"여러가지가 있어요. 아무래도 금기식품을 지키는 상황에서 스님들의 건강과 도락을 생각 안할 수가 없었지요. 그 중에 하나가 된장국수인데 스님들이 자장면 대신에 드시라고 만들었지요. 그리고 꽃을 이용한 무침이나 전을 많이 개발했는데 이는 꽃에 담긴 부처님의 뜻을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

선재스님이 운영하는 사찰음식연구원은 지난주 개원했다. TV강의 등으로 스님의 명성이 잘 알려진 때문인지 첫 음식프로그램 수강생 모집에 5백여명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수용 능력 때문에 30여명만 받아들였는데 연구원 시설이 확충돼 사찰음식에 담긴 참 뜻이 불자든 아니든 일반에게 널리 보급됐으면 하는 게 스님의 바람이다.

이헌익〔문화.스포츠 에디터〕

선재스님은…

56년 수원서 태어나 스물네살때인 80년에 출가했다.

94년 중앙승가대학 졸업논문으로 '사찰음식문화연구' 썼다.

자기자신이 간경화를 앓게 되자 건강를 되찾기 위한 방법으로 사찰음식 연구에 몰두, 95년부터 불교TV를 통해 사찰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현재 보타사에 머물며 사찰음식 연수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최근 요리책 '선재스님의 사찰요리' 를 출간했다.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