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교과서 우향우] <3> 한일 근대사 왜곡-집중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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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 새 역사교과서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침략과 식민지배의 정당화다. 이른바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이하 '모임' )에서 만든 교과서는 정도가 특히 심하다.

이 교과서는 임오군란과 관련된 부분에서 '일본은 조선 개국 후 근대화를 돕기 위해 군제개혁을 지원했다' 고 쓰고 있다. 하지만 1880년대 초반 조선에서의 문명개화를 위한 여러 개혁은 조선 정부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앞서의 표현은 그간의 한.일 양국 학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동학농민봉기와 청일전쟁에 대해서는 조선에서 '동학의 난이라는 농민폭동' 이 일어나 '청과의 합의에 따라 군대를 파견' 하여 일.청 양국군이 충돌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하였다고 쓰고 있다. '동학란' 이나 '농민폭동' 은 한.일 양국 학계에서 이미 쓰지 않는 용어다. 최소한 '동학농민봉기' 정도로 써서 부정적 인상을 피해야 한다.

또 청일전쟁은 우연한 충돌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1880년대부터 일본 정부가 준비해 온 것이었고, 일본 정부는 조선이 청에 군대 파견을 요청하기도 전에 이미 청국군의 두 배나 되는 병력을 파견해 청일전쟁을 도발할 것을 결정했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은 청일전쟁은 '동학란으로 파견된 청.일 양군의 우연한 충돌' 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십여년간 전쟁준비를 해온 일본이 동학농민봉기를 개전(開戰)의 기회로 이용해 도발한 것이다.

일본의 한국병합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는 한국의 병합이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방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 서술했다. '모임' 에서 처음 제출했던 검정본에서는 '한반도가 일본에 적대적인 세력에 들어가게 되면 일본을 공격하는 절호의 기지가 돼 일본의 안보가 위협받게 된다' 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이같은 주장은 1890년대에 일본 내각을 이끈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이래의 이른바 '이익선(利益線)' 론을 계승한 일본 우익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야마가타는 일본의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이익선, 즉 근린에서 본토의 안위와 밀접하게 관계되는 지역도 방어하지 않으면 안되며, 이익선의 초점은 조선에 있다고 언명했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 이익선이 되는 이웃나라를 침략해 이를 식민지화하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논리가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일본의 한국병합에 대해 '한국 내에서 일부 수용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는 대목을 넣은 것은 한마디로 치졸하다. 이는 일본쪽에 붙어서 나라를 판, 그야말로 한줌도 되지 않는 이완용 일파를 과장해 기술함으로써 병합에 찬성하는 한국인이 상당수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를 숨긴 기만적 서술이다.

또 '한국병합 후 일본은 식민지화한 조선에 철도.관개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개발을 하고 토지조사를 개시했다' 고 쓴 부분은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일본의 한국병합의 가장 큰 목적은 경제적 수탈에 있었다. 철도를 놓은 까닭은 한국에서 쌀과 면화를 보다 쉽게 실어가기 위한 것이었고, 관개시설을 한 것은 더 많은 식량을 한국에서 생산해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20년대 산미증식계획사업 당시 늘어난 생산량보다 일본으로 실어간 쌀의 양이 더 많았다는 것이 정설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개발' 이 아니라 '수탈' 이 중심이 된 것이었으며, 이런 사실관계를 배제한 채 '개발' 만을 언급하는 것 또한 기만적 서술이다.

전체적으로 '모임' 의 교과서에서 보이는 한국근대사 관련 서술은 침략에 대한 합리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미화를 의도하고 있다. 게다가 '모임' 의 교과서는 다른 교과서의 서술에도 부정적인 도미노 효과를 가져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종군위안부 관계 서술이다. '모임' 에서 일찍이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종군위안부 문제는 실제로 다른 교과서에서도 대부분 삭제.축소됐으며, 3개 교과서에 실렸던 한말 의병 사진도 이번에 삭제됐다. 이러한 도미노 현상은 '모임' 과 같은 일본 국가주의 세력의 캠페인이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우려할만한 현실이다.

박찬승교수 <목포대.역사문화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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