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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성지 순례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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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기독교 성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돌과 바위와 동굴의 기록이다. 성모 마리아가 메시아를 잉태했음을 고지받은 곳, 그 메시아가 탄생한 곳은 모두 동굴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성지 곳곳엔 거대한 석조 건축물인 교회들이 자리잡고 있다. 유대인 묘지 위엔 꽃 대신 돌조각이 수북이 쌓여 있고, 아직도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돌멩이로 이스라엘군과 맞서고 있다.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지와 관광지 부근에선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 관광이 주요 수입원이기에 관광지 인근에선 테러나 시위를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광객이 찾지 않아 복잡한 성지순례길이 한산하고 수월했다. 3월 말 이 지역의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열기 위해 현장을 찾은 김장환(세계침례교연맹 총회장)목사 일행과 함께 성지를 순례했다.

^예루살렘, 부활의 성묘교회〓예루살렘에선 시간을 1천년 단위로 끊어 생각해야 한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이스라엘의 영웅 다윗왕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것이 3천년전. 그로부터 1천년 뒤 나사렛 사람 예수가 이곳에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 이후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이 곳이 기독교의 도시로 부활한 것은 1천년이 지난 십자군시대다.

그로부터 다시 1천년이 지난 시점에서 찾아본 예루살렘은 이런 역사의 더께를 잔뜩 지고서도 아름다웠다. 예루살렘의 모든 건물은 이 지역 특산인 베이지색 석회석으로 지어져 도시 전체가 고색창연하면서도 장엄하다. 해가 지고 뜰 무렵이면 황금빛으로 눈부시다.

기독교 최고의 성지랄 수 있는 부활의 현장은 시내를 내려다보는 언덕위 예루살렘성(城) 안쪽에 있는 '성묘교회(Church of Holy Sepulcher)' 다. 예루살렘성은 3천년 전 솔로몬왕이 성전을 세웠던 터이고, 현재의 성묘교회는 1천년 전 십자군이 재건축한 것이다.

성묘교회로 가려면 돌담 사이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을 지나야 한다. 예수가 빌라도로부터 사형을 선고받고 십자가를 지고 걸어갔던 그 길. 기독교도들은 지금도 나무십자가를 지고 오른다.

예수가 로마군의 채찍을 맞으며 십자가를 진 곳엔 '채찍 교회' 가, 힘에 겨운 예수가 처음 쓰려졌던 곳엔 폴란드 교회가 서 있다. 그렇게 성경 속의 현장을 짚어가며 골고다 언덕위에 오르면 성묘교회가 나타난다.

교회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 십자가를 세운 곳, 예수를 묻은 곳이 나란히 이어진다. 서너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기념묘지 내부에는 부활해 승천하는 예수의 모습을 그린 성화와 부조 한점씩만 있을 뿐이다. 부활했으니 아무 것도 없음이 당연하지만 성지 중의 성지, 부활의 현장에 대한 기대감을 채우기엔 뭔가 허전하다.

^베들레헴, 동굴속 마굿간〓예루살렘에서 불과 9㎞ 떨어진 베들레헴. 예수가 탄생한 곳에 지은 탄생교회는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다. 1천5백년 전 비잔틴 황제가 세웠을 때의 모습 그대로다.

좁은 입구로 들어서면 어두컴컴한 그리스 정교회식 성당이 나타난다. 그 제단 밑이 예수가 탄생한 곳. 온통 시꺼멓게 그을린 동굴이다. 목동들이 말이나 양떼와 함께 생활하며 겨울을 나던 마굿간이다. 예수가 태어난 자리엔 은으로 만든 '베들레헴의 별' 이 새겨져 있다. 10평 가깝게 꽤 널찍한 동굴 여기저기에서 나직한 기도소리와 카메라 셔터소리가 뒤섞여 울린다.

^갈릴리, 침례와 사역의 현장〓예루살렘의 서쪽은 종려나무 그늘이 서늘한 지중해성 기후인 반면 동쪽은 1년 내내 거의 비가 오지 않는 사막과 같은 유대 광야다. 물이 곧 생명인 이 지역의 생명줄이 요단강이며, 그 강물이 모인 곳이 갈릴리 호수다. 길이 21㎞, 폭 9㎞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라 바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요단강은 예수가 세례를 받은 곳이며, 갈릴리는 베드로가 고기를 잡던 곳이다. 호수 남단 요단강이 흘러나가는 곳엔 관광객들을 위해 침례터를 만들어 두었고, 지금도 호수변 음식점에선 베드로가 잡던 '베드로 고기' 를 튀겨 팔고 있다.

예수가 복음을 전했던 중심지인 북쪽 언덕엔 발자취를 기리는 교회들이 빼곡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장소, 여덟가지 복을 가르친 팔복산이 모두 교회 마당이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순례자들의 표정은 밝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는 찬송처럼.

이스라엘=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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