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현대 일가 체제 정비 서둘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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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창업자 정주영(鄭周永)전 명예회장의 장례를 끝낸 현대 일가가 체제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창업자의 타계 이후 정몽구.몽헌.몽준씨 등 2세 오너들의 체제 구축을 서둘러야 하는 데다 분위기 쇄신 필요성까지 겹쳐 전문 경영인들의 재배치를 포함한 새판 짜기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모기업인 현대건설을 승계한 몽헌 회장의 경우 중단 위기에 빠졌던 금강산 관광사업이 鄭전명예회장의 사망을 계기로 북한의 조문사절단이 빈소를 찾는 등 긍정적 분위기로 바뀌고 있어 경영진 교체에 새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 현대차는 전문경영인 3각체제〓현대차 그룹은 鄭전명예회장 장례식을 치르며 장자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진 정몽구 회장이 대외업무와 해외사업에 전념하고, 경영은 전문 경영인이 맡는다는 큰 틀을 짰다.

이에 따라 이계안 현대차 사장과 김수중 기아차 사장.박정인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사장 등 3각 주력사 체제로 그룹을 이끌어나갈 전망이다.

현대차는 새판 짜기 차원에서 주요 경영진 인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현대.기아차 총괄본부장인 정순원 부사장이 현대모비스 부사장으로 이동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대신 재무.기획통인 노정익 현대캐피털 부사장을 현대.기아차로 불러 기획업무를 맡기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최근 현대차 최고경영진 내부에서 일부 호흡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 데다 분위기 쇄신의 필요성도 있어 정몽구 회장이 체제를 정비하려는 것으로 안다" 며 "장례절차가 모두 마무리되는 이번 주 내로 인사가 단행될 예정" 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현대차 관계자는 "경복고.서울대 선후배 관계인 이계안 사장과 정순원 부사장을 떼어놓고 각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고 말했다.

◇ 29일 주총이 초점〓현대그룹은 자본잠식으로 출자전환설까지 나돌고 있는 현대건설의 경영진 교체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정부와 채권단은 그간 간접적으로 경영진 교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29일로 예정된 현대건설 주주총회가 주목된다. 김윤규 사장이 교체될 경우의 후임으로는 이내흔 전 사장(현대정보통신 회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김윤규 사장은 지난 20일 금강산 관광료 인하 협상을 위한 방북에 앞서 '북한에서 돌아오면 거취에 대해 밝히겠다' 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애도나 조문사절단 파견 등 鄭전명예회장 타계 이후의 상황이 금강산 관광사업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 새로운 변수로 꼽힌다. 이에 따라 금강산 사업의 연속성을 감안, 김윤규 사장이 대북사업을 전담하게 될 가능성도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의 경우 한 때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으로 옮긴다는 얘기가 나돌았으나 지난 23일 최용묵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은 유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으나 자금난을 겪고 있는 현대전자는 경영진 교체여부를 놓고 막판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오는 29일 동시에 열리는 현대건설.전자.상선의 주주총회를 전후해 경영진 교체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 중공업은 쌍두체제로〓정몽준 의원이 오너인 현대중공업은 이미 지난 16일 주주총회에서 최길선 현대미포조선 고문과 민계식 기술개발총괄 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했다. 회사 관계자는 "어느 한 사람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을 만큼 현대중공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두명의 대표이사를 두게 된 것" 이라고 설명했다.

崔사장은 1972년 현대중공업에 입사, 92년까지 전무를 거친 뒤 한라중공업 조선본부장 겸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92년 당시 정인영 한라중공업 회장이 형인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CEO 추천을 부탁, 한라중공업으로 회사를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선 정몽준 의원과 가까운 관계인 최길선 사장의 등장은 현대그룹과의 계열분리를 앞둔 포석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남중.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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