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앞둔 여의도 … 지금은 ‘배심원제’ 실험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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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시민공천배심원제가 ‘사약(賜藥)’이라도 되나….”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이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다. 현역 자치단체장들이 시민공천배심원제(배심원제)를 자신들에 대한 ‘물갈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겁을 많이 먹고 있다는 뜻이다. 이 제도는 ‘각계 전문가+시민+당원’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당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가 압축한 후보들의 정견을 듣고 심층면접을 한 뒤 투표로 후보를 뽑는 방식이다. 원래 진보 정당인 영국 노동당이 취약지구에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선 배심원제 ‘열풍’이 불고 있다. 민주당에 이어 한나라당이 배심원제를 도입했고, 자유선진당도 받아들일 예정이다. 단 한나라당은 배심원단이 민주당처럼 후보를 최종 결정하는 게 아니라 부적격자에 대한 ‘재의(再議)요구권’을 갖는다.

자유선진당의 실험은 충청도에서의 ‘주민 참여 공천제’다. 선진당 허성우 사무부총장은 “충청도에서 시·도당이 추천하는 3인 이내의 주민을 기초의원 후보를 선정하는 공천심사위원회에 참여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각 당은 ‘공천개혁’ 차원에서 배심원제에 접근하고 있다. 조직력이 강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기존 경선의 한계를 극복해 정치 신인에게도 기회를 주거나, 부적격 후보를 걸러내겠다는 목적이다.

배심원제 논의가 빠른 쪽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8일 배심원제 적용 확정 지역(대전+기초단체 8곳)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에선 아직 공심위가 구성되지 않아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발표한 지역은 예상보다 숫자가 훨씬 작았다. 당초 정세균 대표 측근들은 “60곳 정도에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다 논의과정에서 20곳 정도(국회의원이 3명 이상 있는 인구 50만 명 이상 도시)로 축소됐고, 1차로 확정된 곳은 9곳뿐이었다. 수도권과 호남의 반발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정세균 대표는 “2, 3차로 계속 시행 지역을 정해 모양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생각만큼 많은 지역에 도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5일 서울지역의 구청장 예비후보 4명을 놓고 모의실험을 한 적이 있다. 배심원 100명이 전직 청와대 행정관(40대)과 전직 청와대 여성비서관(40대), 서울시의원(50대), 구의회 의장(60대)의 토론을 지켜본 뒤 투표를 한 결과 선거에 처음 나선 40대 행정관 출신이 승리했다. 당 관계자는 “조직력이나 선거경험보다 ‘비주얼’과 ‘토론능력’이 부각됐다”고 평했다.

강민석·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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