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부채 한해 12조원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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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나라 빚 증가 추세가 심상찮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중앙+지방정부)채무는 무려 11조9천3백억원이 늘어나 1백20조원에 육박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1인당 2백55만원의 빚더미에 앉게 된다고 생각하니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외환위기로 만신창이가 된 나라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서민 복지도 확대하려니 돈 들어갈 데가 많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IMF 때 65조6천억원이던 빚이 불과 3년 만에 두배 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이상징후다. 그나마 지난해는 세금이 워낙 많이 걷혀 예상보다 덜 늘어난 게 이 정도라니 어이가 없다.

우리 경제구조상 앞으로도 빚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통계에 잡히지 않은 보증 채무에다 적자 투성이인 연기금, 의보 재정 보조금에다 공적자금 미회수분까지 감안하면 실제 부담은 2백조원이 될지 아니면 정말 4백조원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판에 정부는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3.1%로 재정건전성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다' 고 위안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한푼이라도 빚을 줄여도 시원찮을 판에 감세(減稅)론까지 들먹거리고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재정 적자는 정부 정책 운용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후손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증세(增稅)에는 한계가 있다는 현실을 감안해 우선 낭비부터 줄여야 한다. 나눠먹기나 전시 효과성.선심성 예산, 퍼주기식 복지 예산을 최대한 억제하는 한편 세원 발굴과 탈루 고소득층에 대한 징세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시민단체 등의 역할을 한층 활성화해야 한다. 세계잉여금도 최대한 빚을 갚는 데 써야 한다.

아울러 결국 국가 부채로 이어지는 무원칙한 부실 기업 지원을 줄이고 구조조정도 가속화해야 한다. 고통 분담 대신 손쉬운 재정 지원에만 의존하다 GDP의 1백40%인 6백42조엔에 이르는 빚더미에 앉아 사면초가의 신세가 된 일본의 예는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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