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웃으며 살기에도 짧다’는 이 이야기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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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익살과 유머의 이야기꾼 성석제씨.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절로 미소가 번진다. [김형수 기자]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성석제(50)씨의 소설은 길이에 따라 세 종류로 구분된다. 먼저 장편소설. 조선시대 선비 채동구의 일대기를 코믹하게 그린 『인간의 힘』 같은 게 있다. 그 다음은 200자 원고지 80∼100쪽 분량의 단편 7~8편을 모으는 소설집. 『조동관 약전』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등이 대표작이다. 마지막으로 단편보다 훨씬 짧은 소설 수 십 편을 한 권으로 묶는 소설집이 있다. 이런 책은 때때로 “기존 장르 구분으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씨가 ‘분류 어려운’ 짧은 소설집을 또 한 권 내놓았다. 원고지 5쪽에서 40쪽 분량 49편을 모은 『인간적이다』(하늘연못)이다. 짧은 소설책으로는 네 번째다. 첫 책은 1994년 펴낸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였다. 시인에서 소설가로 전업하며 조심스럽게 냈다. 하지만 짧은 글 60여 편을 모은 산문집으로 오해 받았다.

읽는 사람마다 감정선이 다르다 보니 선호가 갈릴 것이다. 성석제식 웃기는 소설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표제작 ‘황만근…’을 추천해 왔다. 압권은 역시나 ‘황만근가(歌)’다. ‘황’하고 단호하게 소리치고는 잠시 뜸 들였다가 박자를 늘여 ‘마안-그은’하고 이름을 댄 다음 ‘백분, 찝원, 여끈, 팔푼, 두 바리’로 이어지는 노래 가사, 그에 대한 배경 설명을 읽다가 그야말로 포복절도했다. 다시 읽어 보니 ‘황만근…’은 웃기기만 한 게 아니다. 서늘하게 감동적이다. 찝원, 두 바리 등 생소한 낱말들은 주로 황만근의 짧은 혀에서 비롯된 말 실수와 관련 있다. 웃기면서도 눈물 나는 한 사내의 기이한 일생에 절로 숙연해진다.

길이는 짧을지 몰라도 『인간적이다』도 『황만근…』의 범주 안에 드는 작품집이다. 웃기면서도 슬프고 흘러간 옛날은 물론 오늘, 여기를 살피게 된다. 웃음이 당장 필요한 분께 ‘인간의 예의’를 권하고 싶다. 초면인 집주인이 손님 대접은커녕 포도알을 혼자 다 따먹자 심사가 뒤틀린 1인칭 화자가 마침 뱃속이 아프던 차에 소리 나지 않는 도둑방귀를 내키는 대로 뀌다가 끝내 주인으로부터 ‘예의 없다’는 지청구를 듣는 내용이다. 피차 비례(非禮)를 저지르는, 그래서 인간적인 풍경이다.

성씨를 만나면 묻고 싶었다. “왜 이렇게 웃기시는 거냐고.” 웃음의 비결, 의도 등이 궁금했다. 4일 오후 기회가 왔다. 성씨의 ‘웃기는 소설’ 철학은 분명했다.

“더 웃기고 싶다. 우울하거나 기운 빠지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웃으며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 웃기는 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성씨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웃기는 소설이 써진다”고 했다. “어느 순간 글쓰기가 미끄러지며 웃음의 기운이 번지기 시작하면 문장에 변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반복·점층·과장법 등이 그득한 것으로 말이다.

성씨는 또 “감각을 열어 놓은 채 기다리다가 웃기는 소재를 만나면 곧바로 기록화한다”고 했다. 이번 소설집의 작품들도 그런 식으로 얻어진 것들이다. 점점 성씨가 웃음 낚은 어부, 이야기 거간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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