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요리 30년, 중졸 학력으로 대학 강단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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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이제 우리나라 프랑스 음식도 세계 어느 미식가에게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에 올랐어요. 제가 프랑스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던 30년 전만 해도 겉모양만 간신히 흉내냈는데…. "

올해로 프랑스 요리경력 30년을 맞은 신라호텔의 프랑스 레스토랑 '라 콘티넨탈' 임관호(56.사진)수석조리장. 노련한 손놀림으로 그의 요리인생을 총정리하는 새 메뉴를 만들며 계속 말을 이었다.

"1970년대엔 청가재가 없어 새우를 대신 썼어요. 치커리.바질 같은 기본 식재료도 건조품이나 통조림으로 요리하니 제 맛이 날 리가 있었겠어요□"

국내 도입 초기엔 다른 서양요리와 혼재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던 프랑스 음식이 86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특급호텔을 중심으로 프랑스인 주방장을 하나 둘 영입하면서 제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임조리장은 70년대를 프랑스 요리의 도입기, 80년대를 정착기로 규정한다. 이어 프랑스 현지 조리학교 출신의 젊은 요리사들이 가세한 90년대를 성숙기, 2002년 월드컵을 앞둔 현 시점을 창조적 재발전의 단계로 보고 있다.

사실 임씨가 손에 주방 물을 묻힌 것은 30년이 훨씬 넘는다. 충남 부여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상경해 중앙청 구내 양식당에 취직한 때는 64년. 설거지 시절과 취사병 근무기간을 빼고 제대 후 72년 도큐호텔 양식당에 들어가 일본인 주방장에게 프라이팬으로 맞으며 본격적으로 프랑스 요리를 접한 때부터 따진 것이다.

임씨가 78년 신라호텔 개관 때 스카우트돼 지금에 이르기까지 만든 요리는 그의 낡은 10권의 노트 속에 모두 정리돼 있다. 프랑스를 비롯해 30여개국의 유명 식당을 돌며 배운 레서피도 물론 포함돼 있는데 가짓수가 총 5천개를 넘는다.

그는 "불어를 잘 몰라 휴일에도 밤늦도록 레서피 정리작업에 매달려 있느라 아이들에게 '놀아주지 않는 아빠' 란 비난도 많이 받았다" 고 술회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는 그동안 국내외 요리경진대회에서 10여차례 수상했다. 요즘은 중졸의 학력으로 세종대 사회복지원 양식부문 교수로도 일한다. 그래서 음식업계에서는 임씨를 프랑스 요리부문 국내 최고의 요리사로 꼽는다.

"음식의 맛은 정성에서 시작됩니다. 요리사가 갖춰야 할 덕목의 으뜸은 바로 그 정성입니다. " 임조리장이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또 "요리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인 만큼 직접 만들어보고 먹어보는 체험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 고 덧붙였다.

한편 신라호텔 23층에 있는 라 콘티넨탈은 임조리장의 30년 프랑스 요리인생을 기념해 오는 19일부터 이달 말까지 특별행사를 준비한다.

임씨가 30년 동안 쌓은 실력을 총동원한 밀레니엄 스페셜메뉴(9만9천원)가 선보인다.

이는 프아그라(거위간).송로버섯.캐비어(철갑상어알)등 프랑스음식의 3대 명물이 포함된 최고급 음식. 호텔측은 또 과거의 맛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70년대.80년대.90년대 가장 유행하던 메뉴를 한가지씩 만들어 파격적인 가격으로 제공한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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