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외교, 자찬할 때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미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우리 외교팀은 정상회담이 "성과가 있었다" 고 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한 최근 일련의 외교에서 우리 외교안보팀이 국익을 최대한 고려한 정세분석과 그에 대응한 기민한 대처를 하고 있는가에 심각한 회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자화자찬에 앞서 부시 정부와의 대북인식 격차를 뒤늦게 확인한 데 대한 외교안보팀의 깊은 자성도 필요한 때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부시 대통령이 우리의 대북 화해 협력 정책에 딴죽을 걸거나 미온적으로 지지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우려해온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정책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받은 것은 성과라 하겠다.

그러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주력했던 북한의 변화상에 대한 미국의 인식 교정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부시 팀은 오히려 북한체제에 대해 더 노골적으로 나쁜 인식을 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 대해 '회의' 하고 있으며 북한을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언론자유가 없는 나라" 라고 규정했는가 하면,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김정일은 독재자' 라고 거듭 단정했다. 그것도 金대통령 면전이나 워싱턴 방문 중에 말이다.

손님의 방문 목적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나오는 부시 팀도 '비례(非禮)' 라 할 만하지만 그 배경에는 우리 외교의 불찰과 미숙.무능력이 더 큰 요인이 아닌지도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클린턴 정부 때의 정책기조와 부시 정부의 그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고려도 않은 채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탄도탄 요격미사일(ABM)제한 조약의 보존.강화를 합의해준 것은 대표적인 외교실책이다.

金대통령이 오죽 급했으면 그것이 한.러 공동성명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고 미국측을 달래야 했을까.

그렇지만 러시아와는 또 어떻게 되는가. 단추 한번 잘못 꿴 업보치고는 너무 국익이 손상된 일인데도 외교팀은 엉뚱한 변명에 바쁘다.

국제정세가 바뀌는 기미만 보여도 정확한 정세분석을 토대로 사전에 적절하게 대처해야 우리 국익의 최대치가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항차 우리 국익에 사활이 걸린 미국의 동향에 방심한 외교안보팀의 책임은 엄격히 추궁돼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