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명성 쌓는 데는 20년, 무너뜨리는 데는 5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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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30면

일본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도요타가 연일 굴욕을 맛보고 있다. 최정상의 역량을 보유했지만 오만한 나머지 화를 자초했다는 점에서 희대의 불륜 스캔들로 이미지에 금이 간 타이거 우즈에 비견되기도 한다. 도요타의 위기관리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지금 “한 기업이 명성을 쌓는 데는 20년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5분이면 족하다”는 워런 버핏의 일갈이 새삼 절절히 와닿는다.

한찬희의 프리미엄 경영

수 년 전 포드 익스플로러의 타이어 리콜 역시 도요타 사태와 닮은꼴이다. 포드는 2000년 자사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익스플로러에 장착된 파이어스톤 타이어 650만 대를 리콜한 데 이어 다음해에도 1300만 개 타이어 리콜을 실시했다. 이 사태로 포드와 파이어스톤이 입은 타격은 어마어마하다. 상황이 악화된 주된 요인은 양사가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파이어스톤의 새로운 고무공법과 무게중심이 높은 익스플로러의 특성상 타이어가 펑크날 경우 차량이 전복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이처럼 애초부터 문제의 소지가 많았음에도 이에 대한 대비는 소홀했다. 두 회사가 해결책 모색을 미루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동안 리콜 대상 타이어의 숫자는 늘어갔다. 이로 인한 사망자 숫자 역시 미국에서만 148명까지 불어났다. 위험에 대한 경고와 신호가 넘쳐났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징후들은 한낱 일상적인 ‘잡음’으로 치부됐다.

도요타와 포드 등 최근 발생한 일련의 리콜 사례는 크게 보면 동일한 맥락 속에 존재한다. 기업 경영활동에서 일상화된 위험요인을 식별하고 이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같은 리스크라도 그로 인한 피해 정도에는 큰 차이가 발생한다. 특히 발생한 사건이 전사 차원에서 긴급하게 다뤄야 하는 특별한 ‘리스크’인지 여부를 재빨리 감지해 내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른바 ‘지능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업(Risk Intelligent Enterprise)’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이는 이번 도요타 사태 전개 과정에서도 그 필요성이 부각된 바 있다.

먼저 지능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업은 리스크 관리 역량이 개별 사업부문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 전반에 걸쳐 존재한다. 둘째, 이미 확실히 드러난 리스크뿐 아니라 발생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인 리스크도 함께 관리한다. 셋째, 회사의 리스크 관리체계에서 창출된 지식을 전 조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힘쓴다. 넷째, 새로운 리스크관리 기법과 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성공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리스크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리스크를 단순히 기피 대상이 아니라 기업의 가치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사실 중대한 위험요인에 대비하는 리스크 관리 체계는 비단 리스크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프로세스 개선을 통해 궁극적으로 기업 체질 강화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경영활동에 위협이 되는 요인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전략적 유연성이 증대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모든 범위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체계적인 기법이 회사 내에 존재한다는 확신을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면 이는 곧 시장에서의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리스크 관리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능적인 리스크 관리의 비결은 무슨 특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더라도 성공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해 온 기업들은 평범하고 잘 알려져 있지만 남들이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단순한 원칙을 집중적으로 실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위험 가능성을 애써 간과하지도 않지만, 한 번에 완벽하게 퇴치하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효과적인 리스크 평가를 수행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예방, 적발, 대비, 대응, 복구의 프로세스를 반복하는 실질적인 리스크관리 체계를 운영한다.

경영환경이 복잡해지고 다변화하면서 기업이 관리해야 할 리스크의 범위 역시 확대되고 있다. 주요 이해관계자는 물론 직간접적으로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 가치사슬(경쟁업체, 공급업체, 유통채널, 고객 모두를 포함) 전반에 리스크가 어떻게 확산되고 영향을 미치는지도 예측하고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비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실제로 최근 딜로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대다수 기업이 전통적인 재무성과 관련 리스크 관리에 관심과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기업의 34%만이 비재무적인 리스크 요소에 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바야흐로 위험사회다. 이제 위험과 위기에 대한 적절한 대응능력은 단순히 가지고 있으면 좋은 ‘서비스’ 기능을 넘어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 역량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대응능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성공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만약 성공했더라도 지속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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