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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나는 왜 영어 공용어론을 주장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요즘 영어권 국가로 가려는 이민 ·조기유학 설명회장은 한마디로 북새통이다.조기유학 자녀의 뒷바라지를 위해 부인까지 외국으로 보낸 ‘홀아비 아닌 홀아비’들이 주위에 그득하다.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가닥 가능성에 집착을 한다.

'어쨌거나 영어 하나는 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같은 현실 속에 영어 공용어론을 정면에서 제기한 출판물이 다시 등장했다.영어 콤플렉스가 한국 못지 않은 나라 일본도 비슷한 상황 속에서 '일본의 복거일' 격인 저널리스트 한명이 나선 것이다.

신간 '나는 왜 영어 공용어론을 주장하는가'의 저자 후나바시 요이치가 문제의 인물이다.

지난 1∼2년간 한국에서의 영어 공용어화 논쟁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관점에 치우쳐 전개되는 바람에 오히려 제대로 논의된 바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주목거리다.

현재 이 논쟁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긴 하지만 양국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아젠다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논쟁의 본질과 방향을 진지하게 되짚어보는데 도움이 될 만하다.

아사히 신문의 베이징 ·워싱턴 특파원과 미국 총국장 등을 거쳐 현재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는 명쾌하고 대중적인 언어로 양측 입장을 대비시키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일본인들이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족으로 국제 사회에서 당하고 있는 많은 불이익을 지적한다.

이어 “세계 여러 나라의 친구와 네트워크를 만들고 세계 속에서 보다 잘살기 위해” 지적 호기심과 지적 활력을 부여해줄 ‘대화’가 필요하다면서,“앞으로 펼쳐질 시대,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영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즉 개인적 ·국가적 발전의 핵심은 ‘열린 자아’‘열린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는 논리 속에서 후나바시는 한국어나 러시아어 등 다른 외국어도 존중하는 ‘다언어주의’를 기반으로,모국어인 일본어와 제2공용어인 영어가 함께 통용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국민 모두가 일본어·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바이링걸 인구’ 비중을 높이자는 것이며,영어 교재도 영미 문화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인도 ·싱가포르·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범 영어권 사회를 소개하도록 함으로써 제국주의적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언어정책에 관한 전문성이나 치밀한 논리는 부족하지만 이 논쟁과 관련돼 나올 수 있는 모든 비판이나 논지들을 한눈에 훑는데는 유용하다.복거일씨와의 인터뷰를 싣는 등 한국 상황도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다.

지난해말 출간된 '영어 공용어화,과연 가능한가'(책세상)와 비교해가며 읽는다면 보다 명확한 입장 정리가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경희대 한학성 교수(영어교육학과)는 영어 공용어화가 갖는 의미,즉 하드웨어를 규정함으로써 교육제도 개선 등 소프트웨어에 미칠 수 있는 파급효과를 거의 무시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찬반 설문 조사 결과 등 같은 현상에 대해 후나바시와 상반된 해석을 내리고 있어 흥미롭다.

김정수 기자

<한국의 '공용어화' 논쟁>

한국의 영어공용어화 논쟁은 1998년 6월 소설가 복거일씨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를 내면서 촉발됐다.

그는 앞으로 출현할 ‘지구 제국’에서 중심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모국어로 삼아야 하며,그 전 단계로 영어를 한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하자고 주장했다.이에 민족주의적 관점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어 99년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자유기업센터가 한국소설가협회와 공동으로 영어 공용어화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2차 논쟁이 벌어졌다.

교육방송의 설문 조사 결과 찬성하는 국민이 1차 논쟁 직후(45%)보다 10%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2000년 1월 당시 일본 총리였던 고 오부치 게이조의 개인 자문기구인 ‘21세기 일본의 구상’이 제출한 보고서 내용 중 영어를 일본의 제 2 공용어로 삼자는 제안이 알려지면서 국내 논쟁도 더욱 뜨거워졌다.

현재는 잠시 소강상태이지만 영어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어 영어 공용어화 논쟁은 언제든 다시 타오를 불씨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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