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사건 전담기자, 악의 심연과 맞닥뜨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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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허수아비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456쪽, 1만2800원

요즘 미국서 잘 나간다는 범죄추리작가 마이클 코넬리. 개인적으론 그에게 안좋은 기억이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시인』이라는, 경찰관만 골라 죽이는 연쇄 살인범 얘기를 통해서였다. 별 생각없이 그 책 잡았다가 꼬박 밤을 샜다. 다음날, 시커먼 다크 써클을 훈장처럼 안고 후줄근하게 출근했다. 그 때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책 읽기를 하지 않으리라.

해서 코넬리의 이 신간을 손에 들고 망설망설했다. 또 밤 새게 되는거 아냐, 하면서. 책 앞부분을 조심스레 읽었다. 잭 매커보이, LA타임스지 사건 담당 기자. 아하, 『시인』에 나왔던 바로 그 친구가 또 주인공이다.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어이없다는 걸 알면서도 소설을 읽다보면 책속의 주인공이 마치 오랜 친구라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는가. 달라진게 있다면 그로부터 약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매커보이가 출세해 로키마운틴 뉴스에서 LA타임스로 왔다는 거다.

한계를 알 수 없는 인간의 악마성을 상징하듯 붉은 황혼 속에서 섬뜩한 기운을 풍기며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는 까마귀의 모습. [랜덤하우스코리아 제공]

한데 어럽쇼, 가만보니 이 친구 지금 정리해고 대상자다. 연봉이 높아 부담스러우니 나가달라고 회사로부터 통보를 받은 거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2주. 그것도 후임인 새파란 후배 여기자를 교육시키라고 회사가 준 유예기간이다. 40대 초에 옷 벗게 된 착잡한 주인공, 평생의 기자생활 돌이켜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하지만 별수 있나. 다루고 있던 별볼 일 없는 살인사건 기사나 제대로 마무리하고 떠나겠다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눈치빠른 독자들은 감 잡았을 것이다. 첫 번째 반전이 시작될 타임이라는 걸.

그렇다. 평소 같으면 경찰 보도자료로 단신처리하고 끝냈을 이 살인사건, 마지막 기사란 생각에 이리저리 심혈을 기울여 취재하다 보니 어허,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피살된 여자는 자동차 트렁크속에서 알몸으로 발견됐다. 목에 비닐을 뒤집어 씌운뒤 누군가 밧줄로 졸랐다. 허수아비처럼. 그런데 자료를 뒤지다보니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판박이 사건이 있었다. 트렁크 속에서 허수아비로 발견된 또다른 여자다.

범죄수법은 지문과 같다. DNA같은 거다. 똑같은 수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건 동일범이란 뜻이다. 한데 LA에선 흑인소년이, 라스베이거스에선 전남편이 각각 범인으로 검거됐다. 증거는 없다. 둘 다 정황상 그렇게 몰렸다. 그렇다면 결론은? ‘멍청한 경찰이 생사람 잡고 있다’는 뜻이다.

매커보이는 추적을 시작하지만 MIT 출신 연쇄 살인범도 바보가 아니다. 폭로하려는 기자와 그를 감쪽같이 없애버리려는 살인범. 책의 3분의 1쯤부터 둘의 싸움이 시작되는데, 이때부턴 책에서 손을 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허수아비’는 피살자들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연쇄살인범의 별명이기도 하다. 형태는 사람이되 영혼이 없는….

『시인』을 읽은 독자라면 지성미를 갖춘 FBI 여자 수사관 레이철 월링을 기억할 것이다. 『허수아비』엔 그녀도 다시 등장한다. 기자와 여자 수사관은 이번에도 원수가 됐다,친구가 됐다 하면서 사건의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도 기뻤다.

김종혁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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