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미술이여 부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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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쪽에 보이는 안규철씨의 작품 ‘더 뉴 월드’는 각국의 영토 크기를 똑같이 한 새로운 세계 지도로 세계화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당신은 나의 태양'. 이탈리아 민요 '오 솔레 미오'를 떠오르게 하는 격정적인 이 문구가 전시 제목이다. 팝송 '유 아 마이 선샤인'이 흥얼거려지기도 한다. 미술평론가 이영철(계원조형예술대 교수)씨가 한국 현대미술에 바치는 찬사는 이렇듯 뜨겁고 통렬하다.

15일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당신은 나의 태양'은 1960년부터 2004년까지 지난 45년 동안 한국 미술의 작가.작품과 풍경을 거닐며 자칫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우리 미술을 우리 곁 여기다 말뚝 박는 야심찬 특별전이다.

'미술이 죽어간다'는 풍문이 흘러다니는 오늘의 한국 미술판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기획자의 안간힘이 전시장 곳곳에서 폭포처럼 쏟아져내린다. 지하 1층 계단 전시장에 깔린 정복수씨의 남녀 누드는 80년대에 그가 선보였던'바닥화'의 추억을 되살린다. '나를 밟아주세요'로 우리의 현실을 드러냈던 정씨의 작품 곁에는 육근병의 설치작업이 펼쳐진다. 이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김보중.유연복.홍선웅.이승하씨의 작품이 그 시절을 증언한다.

시간을 따른 연대기적인 작품 배치를 기대했던 관람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 면면이 재미있다. 이태호씨의 설치물 '막걸리 보안법', 안규철씨가 우리의 사는 모습을 비유한 누더기 문짝집, 미술을 행동으로 삼은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작업공간, 알록달록한 색 깃발이 흩날리는 이중근씨의 야외작까지 전시는 '한국미술이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고 좌충우돌 에너지를 뿜어낸다.

지난 반세기 한국 사회가 걸어온 길이 전시장에서 미술을 통해 뚫리는 걸 보면 신기하다. 미술은 숨죽이거나 기절하지 않았다. 절대적 가난, 냉전으로 갈린 남과 북의 갈등, 정치적 탄압, 산업화의 증후군, 거품경제와 졸부현상에 미술은 늘 어떤 식으로든 '반응'했고 시대의 상흔과 기쁨을 표현했다.

이영철씨는 60~70년대가 '예술적 전위'의 시기였다면, 80년대는 '정치적 전위'의 시대였다고 전시 배치로 말한다. 과거의 작품을 모으고 작가의 인터뷰를 따서 전시장에 살아 펄떡이는 생물처럼 미술을 숨쉬게 만든 점이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300여 점의 사진자료 활용도 당대의 미술 상황을 증언하는 훌륭한 보조 작품 구실을 해낸다.

이씨는 "한국의 미술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역사를 비판적 지성의 관점에서 시간을 두고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미술 전시가 동시대 사람들에게'생각의 힘'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2월 5일까지. 02-379-3994.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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