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25시] 上. 하루꼬박 뜬눈 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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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시민들 목숨을 구해낼 땐 정말 보람이 크죠. 하지만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 땐 '왜 이 일을 하나' 할 정도로 서글퍼지기도 해요. "

1987년 소방관이 된 서울 관악소방서 양병희(梁炳熙.40)소방교. 경력 13년째지만 아직 연봉 2천3백만원이 못된다.

梁씨는 비번이었던 지난 4일에도 퇴근시간인 오전 9시에 바로 집으로 가지 못했다.

오전 11시까지 동료와 함께 2인1조로 신림9동 골목길의 소화전을 점검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오쯤 귀가해 잠시 눈을 붙이고 오후 8시부터는 동료들과 홍제동 화재현장에서 숨진 소방관들의 합동분향소(서울시청 서소문별관)와 세란병원 등의 빈소를 찾아 밤을 새웠다.

"사실 비번이던 4일이 딸 지은(10)이 생일이었어요. 하지만 아내는 딸 생일잔치를 전날 했더라고요. 제가 쉬는 날 잔치를 하면 소란해서 편히 쉬지 못한다고요. 마음이 아파요. 크리스마스도 제대로 못 챙겨줬는데…. "

梁씨는 집에도 들르지 못한 채 5일 오전 8시40분 출근했다. 9시10분 조회 전까지 방수복.안전모 등 개인장비를 점검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조회시간 내내 동료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닌가 싶어" "참사를 보고 나니 보험 하나 더 들어야겠다는 생각만 들더군" "소방관은 현장에서 죽어야만 대우를 받게 되는 거 아니야" - .

한결같이 우울한 한숨만 쉬었다. 사고가 났던 4일엔 梁씨와 동료들 모두 가족.친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별일 없느냐" 는 걱정들이었다. 조회 직후 梁씨는 구내식당 청소를 위해 걸레를 잡았다. 인력이 부족한 소방서에는 청소를 하는 사람이 따로 없다.

오전 10시30분, 신림네거리로 화재진압 명령이 떨어졌다. 11시30분에 돌아와 더러워진 소방호스를 빠는 그의 등엔 땀이 흥건히 뱄다.

낮 12시. 10분 만에 점심을 먹은 뒤 소방펌프차를 몰고 신림9동 골목길로 소방통로 확보 훈련을 나갔다. 골목길 20여m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5분. "이런 곳에 불이 나면 어쩌나 등골이 오싹해져요. "

이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장비조작 훈련이 이어진다.

4시 이후 두시간의 자유시간이 있긴 했지만 밀린 서류를 작성하느라 쉴 틈이 없다. 6시부터는 장비 점검과 잠깐 동안의 저녁식사를 하고 대기에 들어갔다. 언제 출동명령이 떨어질지 모른다.

"애들이랑 밖에 나가 놀아준 것이 몇년 전인지 기억도 안나요. 밤새 화재 진압하고 나면 아무리 장사라도 놀아줄 수가 없어요. "

동료 소방관은 "딸아이 일기를 우연히 봤는데 '아빠가 아침에 퇴근해서 잠을 잤다. 점심을 먹고 또 잠을 잤다. 저녁을 먹고 또 잠을 잤다' 라고 썼더라고요. 얼마나 씁쓸했는지 몰라요" 라며 梁씨를 거들었다.

성시윤.구희령.김태성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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