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증권업계 '제2 빅뱅' 꿈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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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증권업계가 또 다시 변화에 휩쓸릴 조짐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 불어닥친 고려.동서.동방페레그린.장은.산은증권 등 5개사의 퇴출 또는 매각에 이어 대형화.전문화로 가는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한 짝짓기와 외자유치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주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국내에도 리딩 증권사가 필요하다" 고 발언한 뒤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되던 국내 증권사의 움직임이 뚜렷해졌다.

대우증권은 상반기 안에 해외자금을 끌어들이며 이름을 바꾸겠다고 지난 23일 선언했다. 현대투신증권은 미국계 금융사 AIG의 자금유치에 회사의 운명을 걸고 있다. 리젠트증권과 일은증권은 대주주인 코리아 온라인(KOL)이 철수할 경우 매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증권연구원 노희진 연구위원은 "외국계 서울지점을 포함, 60여개에 이르는 증권사가 모두 독자생존을 하기는 어렵다" 며 2~3년 안에 증권업계가 개편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증권업계가 ▶국내 빅 3~4와 AIG.메릴린치 등 대형 외국계 증권사 3~4개로 구성된 선도 증권사▶중소형 외국계 증권사 3~4개▶10여개 중소형 토종 증권사▶1~2개 온라인 전문 증권사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다.

◇ 봇물 터진 해외 투자유치 논의〓올 들어 은행계 증권사까지 모회사인 은행의 합병논의와 맞물려 외국자본 유치에 나서고 있다. 모회사인 은행이 금융지주사로 변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신한.하나증권은 스스로 살길 찾기에 나섰다. 신한증권은 다음달 중 유력 외국 금융사의 실사가 예정돼 있다. 한빛증권은 하나로종금과 합병한 뒤 외자를 유치해 정부가 주도하는 금융지주사의 간판 증권사로 거듭날 것을 모색 중이다.

여기에 동양.미래에셋.교보.세종증권도 가세했다. 지난해 시도한 메릴린치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동양증권은 곧 새로운 파트너와 협상을 시작할 움직임이다. 지난해 대만계 CDIB의 투자를 유치한 미래에셋증권은 외국 자본을 추가로 끌어들일 계획이다. 교보증권도 해외 투자자를 찾고 있다.

이들 증권사의 1차 목표는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준까지 외자유치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공동경영이나 경영권 양도까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 기존 외국계도 국내 증권사 인수 물색〓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이끄는 서울증권과 대만 쿠스그룹이 참여한 KGI증권, 미국 보험사 프루덴셜이 대주주인 메리츠증권의 움직임도 관심거리다.

서울.KGI증권은 한때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소문에 휩쓸렸다. 두 회사는 철수설을 부인하면서 역공세를 펴고 있다. 국내 중소형 증권사를 추가 인수하기 위해 2~3개사를 물망에 올려놓고 있다. 마이클 창 KGI증권 사장은 "인수의 변수는 가격과 합병 시너지 효과" 라고 말했다. 메리츠증권도 사정이 비슷하다.

올초 프루덴셜과 국제금융공사(IFC)의 자본을 끌어들인 제일투신증권도 외국계로 변신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월말 합작 조인식에서 2003년까지 4억달러를 추가 투자할 수 있는 양해각서를 주고 받은 상태다.

올해 안 합병을 전제로 지난해말 리젠트증권에 소유권이 넘어간 일은증권도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진승현 게이트로 이미지가 손상된 KOL이 한국 철수를 기정사실화한 판에 리젠트증권은 물론 일은증권도 독자 생존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종합자산관리(랩어카운트)서비스 도입과 선도 증권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증권사들이 선진화.대형화로 갈 수밖에 없다" 며 "최근 미국.유럽계에 이어 싱가포르.대만쪽 자금까지 국내 증권사 인수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고 말했다.

허의도.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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