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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어처구니없는 국회, 민생 법안 또 팽개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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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2월 임시국회가 2일 본회의에서 68건의 의안 가운데 39건을 처리하지 못한 채 파행으로 막을 내렸다. 한나라당의 ‘무능력’과 민주당의 ‘몽니’가 빚어 낸 합작품이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교체육법안’의 부결이 단초(端初)였다. 학생 운동선수가 일정 학력에 미달하면 대회 출전을 제한하자는 법안이다. 그러나 “법안 내용, 실효성의 문제는 물론 상임위에서 충분한 논의가 없어 절차의 하자가 있다”는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의 반대토론 이후 법안이 부결됐다. 발끈한 민주당이 퇴장해 정회가 이어졌고, 4시간 뒤 한나라당이 친박연대와 단독으로 본회의를 재개했지만 여당 의원이 90여 명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의결 정족수(定足數) 미달로 모든 게 끝나고 말았다.

민주당은 “여야 간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했던 신뢰를 깬 행위”라며 퇴장의 이유를 댔다. 그런 논리라면 ‘법안심사소위-상임위-본회의’ 등의 3단계 국회 심의 절차는 무슨 필요가 있는가. 상임위의 식견·전문성에 더해 국민의 평균 정서나 여론의 잣대로 한 차례 더 검증과 여과를 해보자는 게 본회의 표결의 의미다. 더구나 이 법안은 발의 때부터 실효성, 도입 시기 등을 놓고 사회적 논란이 적잖았다. 제1야당이 의석을 박차고 나갈 사안은 아니다. 헌법기관인 의원 개개인이 본회의에서 모은 판단, 그 자존심마저 스스로 부인한 모양새였다.

보다 한심한 쪽은 ‘초식공룡’이라는 169석 한나라당의 무기력과 나태(懶怠)다. 이들은 2월 초 114개 중점법안 리스트를 꺼내들며 “민생·일자리 국회를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그런데 나머지 79명의 이 정당 의원들은 민생 심의를 떠나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책 제목만 그럴 듯한 지방선거 출마 중진의 잇따른 출판기념회에 눈도장 찍는 게 더 급했나. 명백한 직무유기(職務遺棄)다. 2008년 9월에도 예결특위의 의결정족수를 못 채워 민생 추경안 4조2677억원을 처리하지 못했던 게 이 정당이다. 이 와중에 여야가 의원 보좌진을 1명씩 늘리는 법안은 세 번째로 신속 통과시켜 밥그릇을 챙겼다니…. 더 할 말도 없다.

막장 국회의 후유증은 국민에게 돌아올 뿐이다. 여야가 발목 잡은 39개 법안 중에는 경제·민생 관련이 대다수였다. 장애인 창업을 지원하는 장애인 기업활동 촉진법 개정안 등은 먼지를 뒤집어 쓰게 됐다. 영세자영업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고용보험법과 근로자퇴직연금보장법, 사회적기업 육성법 등의 민생·일자리 법안들은 상임위 단계의 늑장 처리로 낮잠을 자고 있다.

4월 국회 역시 기약이 없다. 세종시 수정 관련법안이 제출되면 국회는 홍역을 앓을 수밖에 없다. 6·2 지방선거도 코앞이라 괜한 기싸움 속에 정파의 관심은 콩밭으로 갈 공산이 크다. 그래서 연중 상시 국회와 상임위 상설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국록(國祿)을 받는 본업인 입법을 팽개칠 만한 어떤 핑계도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의원들이 맹성(猛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