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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2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23. "원칙대로 해 고맙다"

외환은행장을 할 때 윤석민(尹錫民) 대한선주 회장을 비롯해 부실 징후 기업의 오너들이 돈을 싸들고 나를 찾아왔었다. 사정이 다급해져 대출 청탁을 할 때 '노' 소리를 못하게 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방에 들어서면서 공연히 언성을 높이는 등 오버 액션을 했다.

이들이 나타나면 나는 일부러 옆 자리에 붙어앉았다. 대화를 나누다 손이 양복 저고리 품 속으로 향할라 치면 재빨리 그 손을 내 손으로 눌러 아예 봉투를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체면이 깎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봉투를 이미 꺼낸 상태에서 거절하면 본의 아니게 망신을 주는 결과가 돼 버리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나는 "받은 것이나 진배없이 처리하도록 하겠다" 고 말했다.

이런 내게 동향(同鄕)인 고 박건석(朴健碩) 범양상선 회장은 생전에 "나한테까지 그럴 거 뭐 있느냐" 고 섭섭해 했었다.

재무장관으로 있을 때 이른바 범양 리스트에 올라 있던 사람들은 이른 시일 안에 명분을 찾아 스스로 사퇴하도록 조치했다. 배달사고로 당연히 리스트에서 빠졌어야 할 사람들은 물론 제외됐다. 사표 받기는 부총리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한동안 계속됐다.

부실기업 정리에 착수하며 나는 "사람은 잡아 넣지 않겠다" 고 스스로 다짐했다. 외환은행장 시절 이미 김만제(金滿堤) 재무장관(현 한나라당 의원)과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했었다.

부실기업 정리 초기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문제가 있는 부실기업주는 형사처벌을 해서라도 혼쭐을 내라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이런 대통령을 김장관은 제3자 인수방식이라는 카드를 마련해 설득했다.

문제는 부실기업주의 해외 도피였다. 일단 해외로 빠져나가면 속수무책이었다. 해서 나는 부실기업 정리에 착수할 때 우선 부실기업주의 여권부터 받아 놓도록 했다. 당시 부실기업주 가운데 해외로 나간 사람은 그래서 한 명도 없다.

'물에 빠진 개는 몽둥이로 쳐라' 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 당시 부실기업주들은 정권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소송등을 통해 회사 되찾기에 나섰다.

지금 와서 얘기지만 어떤 땐 부실기업주들을 잡아들이지 않은 게 과연 잘 한 일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1997년 여름 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를 거쳐 홍콩에서 중기투자관리유한공사 총재, 중기개발기금 주석 등으로 일한 뒤 10년만에 귀국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의 공백.

차 한 잔 하자는 사람도 흔치 않을 때 한진그룹의 조중훈(趙重勳) 회장이 점심을 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는 새삼스럽게 10년 전 대한선주 인수 때의 일을 떠올리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내가 받을 인사가 아니었다.

"고맙다니요. 저는 기준대로 처리한 것밖엔 없는데요. "

"그렇게 원리원칙대로 안 봐 주고 처리해 줘 고맙다는 거예요. "

그는 그 때 섣불리 무슨 도움을 받았다면 5공 이후 틀림없이 말썽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까지 무사하지 못할 거요. "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은 사실 접니다. 대한선주 인수 후 한진을 세계적인 해운회사로 키우셨으니 그 때 내 판단, 내가 취한 조치가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 주신 셈이죠. "

그의 설명을 듣고 나는 그렇게 화답했다.

대한선주 처리는 기업주의 불복으로 대법.헌재까지 갔지만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필귀정이었다.

80년대 부실기업 대한선주의 제3자 인수 드라마는 그렇게 끝났다. 10여년만의 해피 엔딩인 셈이다.

정인용 前경제부총리

정리〓이필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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