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쿨’한 선수들 대접도 ‘쿨’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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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미 너무 많이 느꼈고 감탄했고 고마워했기에 새삼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를 칭송하는 표현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가 ‘티 없는 옥’처럼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마치며 눈물지었을 때 우리네 평범한 아줌마·할아버지들도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그 순간, 김연아는 우리 모두의 희망의 아바타였다. 이런 놀라운 자기 투사의 경험이 전 국민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스포츠 스타는 국민통합의 발전소 구실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추어 정신’이라는 말이 기억나시는지 모르겠다. 예전 올림픽은 아마추어 선수들의 축제였고, 그 시대에 ‘아마추어’는 바람직한 스포츠 선수의 유일한 모델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인 지금은 스포츠 선수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아마추어인지조차 불분명해졌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스포츠 또한 근대화의 역정과 맞물려 국가가 직접적으로 개입한 나라에서는 올림픽과 아마추어의 혈연 관계란 애초에 이해하기 힘든 주제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이번 겨울올림픽의 성과에 대한 전반적인 반응은 워낙 차분해 오히려 감동적일 정도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광복 후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를 떠올려 보면 그렇다. 그때의 국민적인 환호에 필적할 만한 음향은 글쎄, 쇼트트랙에서 성시백 선수가 결승선 앞에서 넘어졌을 때 캐스터와 해설자가 내지른 비명 정도랄까. 양정모 시대만 해도 우리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가난뱅이 흥부의 집안에 제비가 물고 들어오는 박씨 비슷한 것이었다.

지난 20여 년 사이에 우리에게는 황영조와 이봉주라는 걸출한 두 명의 마라토너가 있었다. 황영조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바로 은퇴했고, 이봉주는 최근까지 여러 차례 전력을 다해 뛰었다. 어찌 보면 황영조는 ‘프로 정신’에 기울어 있었고, 이봉주는 ‘아마추어 정신’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원론적으로 아마추어는 자신이 좋아서 최선을 다할 뿐이지만 프로는 분명한 목표를 지향하게 마련이다. 목표를 이룬 황영조는 계속 뛰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고의 연기로 금메달을 딴 직후부터 김연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처음엔 귀국하지 않고 바로 토론토로 가서 23일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바뀌어 1박2일 일정으로 서울에 왔다. 그러니까 밴쿠버에서 서울로 날아왔다가 하룻밤 자고 다시 토론토로 간다는 것이다. 이건 아마추어 스타일일까, 프로 스타일일까. 정답은 국가 스포츠 스타일이라 해야겠다.

벌써 올림픽 피겨 2연패를 운위하는 소리도 들린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도 4년 후 김연아가 아예 트리플 악셀까지 해내 주길 기대한다고 하는데, 다만 여러모로 오버는 하지 말아야겠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김연아는 올림픽에 또 나가기엔 이번에 지나칠 만큼 너무나 잘해 버렸다. 다시 말해 4년 뒤에는 시쳇말로 ‘잘해야 본전’이라는 얘기다. 이런 정황을 뻔히 알면서도 오로지 국위 선양의 명목으로 김연아의 등을 떼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김연아 선수만 주로 언급하고 이번 겨울올림픽 얘기를 마치자니 모태범·이상화·이승훈 등 다른 멋진 선수들에게 몹시 미안하다. 이 친구들에게 어떤 덕담을 해 줘야 할까.

“스케이터들이여, 계속 ‘쿨’하기 바람!”

정재숙 문화스포츠부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