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남북시대] 초상화 교체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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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978년 어느날 저와 함께 일하던 출판사의 한 기자가 사색이 돼 업무를 인계하더라고요. 일곱살난 아들이 집에서 놀다가 김일성(金日成)주석의 초상화 액자를 깨뜨렸다는 거야요. 이 기자는 결국 출당(黜黨)조치를 받고 산골로 추방됐습니다."

한 탈북 여기자의 증언이다.

북한 주민들은 직장에 출근하자마자 무엇보다 먼저 金주석.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닦는 '정성사업' 부터 시작한다.

초상화를 훼손시키면 처벌을 받고, 기관장도 3일 이내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문책당할 정도로 엄격하다.

이렇게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金주석.金위원장의 초상화를 북한당국은 최근 '인민복 차림' 에서 '군복 차림' 으로 교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18개월간 북한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다 추방된 독일의사 노르베르트 플로첸(42)박사의 증언에서 드러났다.

그는 "군복 차림의 金주석.金위원장의 초상화가 호텔과 병원.관공서는 물론 평양.혜산 등지의 일부 가정에 걸려 있었다" 고 말했다.

교체된 金주석의 초상화는 흰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양복 형태의 군복 차림으로, 양 어깨에 대원수 견장을, 넥타이에는 오각별 휘장을 달고 있다.

金위원장은 金주석과 달리 양 어깨에 견장을 달지 않은 대신 양쪽 목깃에 원수 계급장을, 목에 오각별 휘장을 달고 있다.

이번 조치는 金위원장의 선군(先軍)정치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金위원장이 "내 힘은 군력(軍力)에서 나온다" 고 밝혔듯이 경제활동 부문에서까지 군대를 앞세우는 등 군 중시 방침을 고수해 왔다.

이것은 또한 북한당국이 체제유지를 최우선한다는 정책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동안 북한의 신문.방송은 종종 화재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金주석.金위원장의 초상화부터 건져낸 군인이나 주민들을 '수령결사옹위의 표본' 으로 대서특필해 왔다. 이들에게는 영웅 칭호까지 부여한다.

북한에서 金주석.金위원장의 초상화는 '1호작품' 으로 분류, 특별관리된다.

초상화는 '만수대창작사 1호작품과' 소속의 '1호작품 미술가'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릴 수 없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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