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여론 지켜봐가며 …" 위헌 반박논리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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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정과제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참모들과 함께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

노무현 대통령은 22일 아침 해가 밝자 보좌진들을 관저에 불러 모았다. 김우식 비서실장, 김병준 정책실장과 민정.홍보.시민사회 수석 등 대부분의 수석.보좌관이 오전 7시의 조찬에 참석했다. 노 대통령이 율사 출신이고 박정규 민정, 문재인 시민사회 수석 역시 검사. 변호사 출신이다.

이 때문에 헌재가 신행정수도특별법을 위헌으로 결정한 핵심 고리인 '관습헌법' 얘기가 우선 화제가 됐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거참…. 원체 선례가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독특한 논리라서…, 뭐 그런 식의 얘기가 오고 갔다"며 이 자리의 분위기를 전했다.

조찬 회동에서는 이같이 헌재 결정을 어떻게 볼 것인지와 향후 청와대가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결국은 장기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이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신중히 대책을 검토해 나가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한 수석비서관은 전했다.

총리실의 핵심 관계자도 "노 대통령이 '차분히 가야 한다. 침착하게 대응하라. 대안을 먼저 내놓기보다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관습헌법을 적용했다는데 법리적 판단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여기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이를 알려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청와대 기류를 전했다.

다만 국가균형발전 3개 특별법 중 신행정수도특별법만 위헌 결정을 받은 만큼 여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지방분권특별법에 따른 245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자치경찰제 등의 정책 기조는 유지해 간다는 데에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번 사태의 장기전 전략을 세운 데는 몇가지 고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다는 게 그 요체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헌재에서 얘기하는 수도와 관습헌법의 개념이 무엇인지 여론도 있는 것이고…"라며 "행정수도 이전의 재추진 여부는 시간을 갖고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헌재의 결정에 정면 반발할 경우 헌법 수호 기관에 대한 승복 논란이 청와대로선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 때문에 어떤 전략이든 헌재 결정의 반박논리 발굴과 여론의 반전 없이는 추진력을 갖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22일에는 공식 당.정.청 접촉도 하지 않는 등 여권 전체가 슬로 키로 가고 있는 국면이다.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원내대표는 헌재 결정이 난 21일 밤 혼자 사무실에서 저녁을 도시락으로 때우며 여의도 오피스텔 숙소로 돌아가서도 헌재 결정문만 꼼꼼히 뒤적였다. 여권 전체가 눈을 켜고 법리적 반박논리와 해법을 개발하고 있다.

천 대표와 함께 청와대 일각에서는 "'수도가 꼭 서울이 아니고 다른 지역이 될 수도 있다'는 관습의 변화만 확인하면 굳이 개헌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냐"는 논리를 내세운다. 즉 국민투표로 국민의 변화된 관습을 확인하면 헌재가 요구한 개헌을 시도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청와대 일각에선 개헌은 국민 다수가 그 필요성에 동의할 때만 가능하므로, 헌재가 요구해온 개헌 가능에 대해 먼저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선(先) 국민투표, 후(後) 개헌여부 결정' 논리다.

그러나 '반드시 개헌하라'는 헌재의 결정 효력을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우세한 상황이다. 그래서 행정수도가 아니라 과천 같은 행정타운을 당초의 행정수도 예정 부지에 건설하는 안도 우회적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그간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지방화 대통령과 국정 시스템을 정착시킨 대통령"이라고 답해 왔었다.

한 참모는 "이번 사태는 단지 법안의 존폐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치적, 남은 임기의 관리 능력과도 연결되는 문제"라며 "장고에 들어간 노 대통령이 꼬인 실타래를 풀 묘수를 모색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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