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물에서 놀아 본 안정환, 허정무의 마지막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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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이 돌아왔다.

안정환(34·다롄·사진)이 3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 1년9개월 만에 A매치 복귀전을 치른다. 남아공 월드컵 개막 100여 일을 앞두고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이 꺼낸 마지막 카드다. 경기 후반 분위기를 반전시킬 ‘특급조커’ 찾기에 골몰해온 허 감독은 결국 그의 경험에 승부수를 던졌다.

◆큰 무대에서 이미 검증된 파괴력=안정환은 지난 두 차례 월드컵에서 3골을 넣었다. 전성기였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미국과의 조별리그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각각 극적인 헤딩골을 성공시켰다.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는 역전골을 넣어 승리의 주역이 됐다. 이때만 해도 안정환은 해외이적을 놓고 혼란스러웠다. 2005년 프랑스 메스로 이적했으나 전반기 2골에 그쳤다. 2006년 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블랙번으로 이적하려다 실패한 뒤 독일 뒤스부르크로 팀을 옮겼으나 활약이 미미했다. 하지만 그의 경험을 높이 산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독일 월드컵에서 안정환을 다시 불렀고, 그 결단은 보상을 받았다. 허정무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토고전 때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시즌 중국 수퍼리그에서 6골에 그쳤지만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후반에 투입해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능력만큼은 검증됐다는 판단이다. 대표팀 관계자는 “큰 무대에서 안정환의 결정력은 이미 검증받았다. 현역선수 중 그만한 선수는 없다”며 코칭스태프의 분위기를 전했다. 대표팀 주장 박지성(맨유)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는 “안정환 선배는 대표팀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 왔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며 신뢰를 보냈다.

◆세월이 준 여유와 족쇄=대표팀에 합류한 안정환은 어느덧 최고참 이운재(37·수원)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선수가 됐다. 그는 “10분이든 20분이든 대표팀에 꼭 도움이 되고 싶다. 사실 대표팀 합류는 기대하지 않았다. 뜻밖에 온 기회를 꼭 살리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한때 혼자 하는 플레이로 비난을 받았던 그는 이제 팀을 생각하고 있다. 월드컵과 지지리도 인연이 없었던 비운의 후배 이동국(전북)의 대표팀 내 입지가 여전히 불안한 것에 대해 “이동국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움(어시스트)을 주고 싶다”며 선배다운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컨디션이다. 아직 중국 리그가 개막하기 전이라 실전감각이 부족하다.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컨디션은 80% 수준. 게다가 그의 이름값도 부담스럽다. 왕년의 스타가 벤치만 지켜서는 팀 분위기에 도움될 게 없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감독을 역임한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스타급 선수들을 적극 활용하지 않을 바에는 안 데리고 가는 게 낫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고참은 어린 선수들에게 부담스러운 대상”이라고 말했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최다골(3골) 기록을 보유한 안정환이 3대회 연속골 기록을 세울 발판을 마련할지, 코트디부아르전에서 판가름 난다.

런던=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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