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좋다] 김병국 원광대 신방과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이름 석자만으로도 알 만한 그리고 아직은 서울에서도 한참 잘 나갈 만한 명사들 중에 연고를 찾아 스스로 지방생활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삶의 새로운 장을 열어 지방에 사는 즐거움을 얘기하는 글을 보게 되면 저절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물론 그런 글들에서 필자들의 개인적인 멋과 인품을 느끼게도 되지만, 때론 고산 윤선도나 다산 정약용 등을 떠올리며, 바로 이분들이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세계화.정보화라는 그물망 사회에 걸맞지 않은 가치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각박한 현실에서 스스로 벗어나 어느 한적한 지역사회에서 그저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살면서 자신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종교인 못지 않은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실제 지방에 살면서 지방의 현실을 둘러보면 맑은 공기와 자연, 아직도 넘쳐나는 인정(人情) 등을 자랑하기에는 지역경제가 너무 각박하고, 지방에 대해 뒤틀린 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모순된 사회.문화적 현실이다.

우선 대학을 보더라도 지방에 있는 대학은 아무리 좋고 교수진이 우수하더라도 너나 할것없이 모두들 삼류.사류로 취급해 그 지방에서조차 학생 유치에 어려움이 많다.

졸업생들의 일자리마저 지방에는 별로 없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지방에 있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직장과 그 지역사회를 단지 월급을 위한 일터 정도로 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자녀들 교육이나 문화수준 등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말이다.

이러다 보니 지방이 약간의 임대료를 받고 장소를 빌려주는 곳 정도로 전락하는 게 아닐까. 지방경제에 별 보탬이 되지 못하는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오히려 지역주민들의 열등의식을 심화시키는 경우도 적지않다.

어디나 다 사람 사는 곳일텐데 자기가 사는 곳을 '돈은 벌 수 있지만 가족과 함께 살 수는 없는 곳' 쯤으로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면서 작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앞에 붙어 있는 '축 ×××동문 장군 진급' '축 ×××동문 사법시험 합격' 등의 플래카드가 주는 작은 감격에 겨워하다가도 위와 같은 모순된 현실을 떠올리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그래도 지방은 인정이 메마르지 않은 따뜻함을 갖고 있다. 소박하고 꾸밈 없는 주민들의 생활은 수도권 사람들이 부러워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서로가 서로를 내일처럼 돕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지방 주민들이 경제.교육.문화 등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패배자가 아닌 진인(眞人)으로서의 고산과 다산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지방, 자존심을 회복한 지방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김병국(金炳國)(원광대 신방과 교수.행정대학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