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디지미술관서 박일주 유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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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숨막히는 아름다움의 극치, 지독한 장식성, 극미한 장인의 솜씨. "

서울 혜화동 디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청도 박일주(1910-94)유작전에 대한 미술평론가 경기대 박영택 교수의 평이다.

박일주씨는 일본과 파리에서 주로 활동해 국내 화단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 대구에서 태어나 경성제일고보(경기고의 전신)와 일본 문화학원을 졸업하고 유엔군 사령부 전속화가 등으로 활동하다 75년 파리로 이주해 현지에서 작고했다.

지난 해 10월 문을 연 디지미술관은 고인의 작품만을 위한 전용전시장이다. 고인의 동생의 외손자인 강월도 한성대교수가 일본 도쿄시절 대표작 28점을 모아 도록과 전용미술관을 만든 것.

전시 중인 작품들은 어린 시절 즐겨 듣던 선녀나 숲속의 요정이야기를 그린 듯한 환상적인 풍경과 여인을 담고 있다.

풍경에는 빠알간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숲과 새와 나비, 은하수와 별이 등장한다.

가슴이 터질 듯 풍만하고 몸매에 굴곡이 심한 에로틱한 여인이 함께하기도 한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검은 색을 바탕에 깔고 군데군데 여백의 흰부분이 나무나 여인의 형상을 이룬다. 화려하게 채색된 꽃이나 열매도 한자리를 차지한다. 장식화처럼 극도로 정교하게 그려진 기이한 몽상의 풍경들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욱하게 풍기면서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박영택씨는 "격렬한 동세와 자세, 움직임과 흘러감, 소용돌이와 빠른 상승을 담고 있는 화면은 약동성과 동양화에서 말하는 기운으로 충만하다.

화면 안의 모든 것이 살아 있는 이 그림들은 열락의 상태, 혹은 범신론적 세계관의 이상향을 보여주고 있다" 고 평가했다. 02-3675-5924.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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